며칠 간 불쾌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일과 시간이 마무리 될 때면 그 불쾌한 기분이 더 증폭되었다. 그제 새벽에는 두세 번 정도 잠에서 깨었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불성실한 태도로 논문 지도를 요청(?)해온 한 학생 덕분이었다.
이야기 하자면 길지만 졸업이 코앞인데 학년 중에 혼자만 논문 마무리를 못한데다가 지도에 따르지도 않고 더구나 ‘버르장머리’까지 없었다(라고 판단했다.) 그래 좋다. 나는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명상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까... 나는...나는...나는...
내 위주로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주변은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지도교수 인데! 이런 꼰대력 대폭발의 이기적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렇게 울화통이 터지는 데 또 서평을 써야한다. 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제목은 기분이 나쁘고, 대충 훑어본다.
“질투는 비난, 폭력, 관계 파탄 같은 고통을 일으키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자연선택은 인간에게서 이 끔찍한 감정을 제거하지 않았다. ‘의과대학 출신의 세계 진화생물학 대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는 랜돌프 M. 네스는 그 이유를 ‘생존과 유전자의 재생산’이라고 꼽는다. 인간들이 생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자연이 불안, 우울, 슬픔, 수치심 등의 나쁜 감정을 인간이 ‘느껴야만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부해도 달라붙는 이 감정은 결국 느껴야만 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라니. 요즘 내 심사를 느껴보면 수십 년의 마음공부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결국 느껴야만 한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몇 장을 더 넘겨본다. 심리학 서적이지만 과학적 연구결과가 탄탄하게 따라 붙는다.
“연못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족을 위해 물을 길으려고 하는데 저 멀리 사자를 봤다고 치자. 우리 조상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사자의 힘에 감탄하고, 어떤 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사자의 밥이 됐다. 또 어떤 이들은 짐을 다 내던지고 제일 가까운 나무 위로 달아났다. 그들은 다음 날에도 살아남았다. 그들의 유전자는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그 불쾌한 감정에 의지해서 2~3일을 보냈다. 맞서지 말고 살살 이리 저리 굴리며 감정의 근원을 복기하니 흘려보낸 시간만큼 내 감정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다. 책이 두꺼워서 절반 겨우 넘겼지만. 다 기록하지 못할 만큼의 인사이트가 넘치는 책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