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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k4438님의 서재
  • 노화의 종말
  • 데이비드 A. 싱클레어.매슈 D. 러플랜트
  • 19,800원 (10%1,100)
  • 2020-07-30
  • : 15,617

노화의 종말 - 할머니를 그리며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 다 되어서였다. 내 할머니는 한 평생을 자식들 키우고 농사일에 매달려 허리가 구부정해버린 꼬부랑 할머니였다. 어느덧 치아까지 안 좋아져서 어른 되면 꼭 틀니를 해드려야지 생각했었는데 이뤄드리지 못했다.

 

왜 사람은 태어나고 아프고 늙어가다 결국엔 죽는지. 삶의 행간 행간에서 살짝 쌘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것처럼 아주 짧게 스쳐지나갈 뿐 길게 머무는 고민은 아니었다. 나는 아주 어렸으니까.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임종은 편안하셨다고 한다. 자식들은 큰 소리로 곡을 했고, 손주들은 살짝 눈시울을 붉혔을 뿐이었다. 유독 예쁨 받고 챙겨주셨는데 막상 나는 실감을 못했다. 왜 할머니는 늙으셨을까. 염을 하기 전에 잠깐 가족들과 만나는 시간에 할머니의 창백한 시신을 바라봤다. 왜 할머니는 떠나셨을까.

 

어느덧 나도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의 절반만큼을 살게 되었다. 이제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늙어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살짝 쌘 바람 같았던 고민이 이제 점점 코끝에 머무는 간격이 길어진 것 같다. 특별히 건강을 챙기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영양제와 건강보조제를 한 주먹 털어 넣었다가 건강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걱정거리를 챙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운동해야지, 요가 해야지, 아니, 하다못해 걷기라도 해야지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그냥 쉬자. 그래 역시 뭐든 책으로 배워야지. 책 한권을 손에 쥐고 드러누었다. 책 이름은 『노화의 종말』이다. 왜 이렇게 두껍지? 들고 있으면 팔 운동은 되겠지 싶다.

 

한 장 두 장을 넘겨본다. 지은이가 유명한 학자라고 하니까 안심이 된다. (저자 데이비드 A. 싱클레어 (David A. Sinclair)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블라바트닉연구소의 유전학 교수이자 하버드 폴F.글렌 노화생물학연구센터 공동 소장,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노화연구실 책임자이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건강해진다는 격언이나 적당한 건강 관리법이 실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간단한 책이 아니었다.

 

“종으로서 보면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나은 삶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가 사는 햇수는 늘어났지만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늘어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살 만한 삶 자체는 그다지 늘지 않았다.”

 

내 할머니 보다 내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영양제를 들이키는 내가 더 행복한 삶이었을까? 허리도 아직은 반듯하고 치아도 여전히 튼튼한 내가 할머니 보다 더 나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시간에 결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산소 호흡기와 온갖 약물. 엉덩뼈 골절과 기저귀.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수술 또 수술. 그리고 의료비. 맙소사, 그 엄청난 의료비. 우리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간다.”

 

우리 할머니는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평온하게 돌아가셨다. 나도 그렇게 가고 싶지만 아마도 그렇긴 쉽진 않을 것 같다. 근데 책이 왜 이렇게 솔직해?

 

“더 이상 사망을 노년 탓으로 돌리지 않게 된다. 이제 '늙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지난 세기에 걸쳐서 서양 의학계는 언제나 노화보다 더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믿게 되었다. 사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우리는 사망의 원인을 좀 더 까다롭게 따지게 되었다.”

 

이 책은 상당히 솔직하고 진지하게 노화의 개념을 재정립해간다. 우리는 늙는다는 것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자,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노화를 부정하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 인간 본성과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여긴다. 부처님도 생로병사를 인간의 실존적인 고통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저자는 ‘대범하게’ 말한다. "노화는 정상이 아니라 질병이며, 이 병은 치료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연하고 중단하고 역전시킬 수" 있으며 "노화만 해결하면 모든 장애와 질병에서 벗어나 누구나 건강한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책은 40억 년 진화의 역사와 최신 유전학, 후성유전학, 의학, 과학에 근거해 노화의 단 한 가지 근본 원인을 밝혀낸다.

 

장수 유전자와 항노화제, 장수 약물에서부터 노화 예방 백신과 세포 재프로그래밍, 생체표지추적, 맞춤 장기 생산 등 최신 의료 기법, 저아미노산 식단과 저온 노출,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등 라이프스타일 개선법까지 일상 생활습관과 최첨단 과학 의료 기술을 망라하는 놀랍고 획기적인 장수의 비법들을 일러주는 두께만큼 실속 있는 책이다. 그런데 다만 이것이 이 책의 전부일까?

 

“상당히 연장된 활력이 우리 미래의 확실한 일부라고 할 때, 당신은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는가? 부자가 빈자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그럼으로써 해가 갈수록 더욱 부유해지는 미래라도 괜찮겠는가? 계속 늘어나는 인구가 지구에 마지막 남은 자원까지 깡그리 긁어내고 세계가 점점 더 거주 불가능한 곳으로 변하는 곳에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할 일은 전혀 없다.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하면 그런 미래가 올 테니까. 사실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든 말든 상관없을 것이다. 그냥 편안히 기대어 앉아서 세계가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다만 몇 번 흉내 내다가 멈출 건강법이나 알려주고 허무맹랑한 유사과학 건강이론을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는 웅장한 메시지가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한 미래가 있다. 늘어난 젊음이 보편적인 번영, 지속 가능성, 인간의 품격을 더욱 증진시킬 횃불이 되는 미래다. 질병들을 각개 격파하는 방식에 토대를 둔 의료 산업 복합체로부터 막대한 자원이 풀려나 다른 도전 과제들에 대처할 엄청난 기회가 생기는 미래다. 이 행성에서 오랫동안 산 이들이 지식과 숙련된 솜씨 덕분에 존경받는 미래다. 선한 사마리아주의가 세계로 퍼지는 미래다. 또 이 미래는 우리가 싸워서 얻어야 하는 것이다. 결코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부모는 큰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했지만 ‘아직은’ 풍성한 머리숱을 대신 물려주셨다. 이건 사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협력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까? 나의 할머니가 내게 전해줬던 꼬깃한 용돈과 과일사탕과 손주들 착한 사람 되라고 올려주신 기도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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