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공주처럼>(이금이, 2019, 사계절)

먼저 표지를 살펴보자. 파스텔 분홍과 하늘색으로 꾸며진 배경 사이 하얀 색으로 표현된 여자 아이가 보인다. 그 아이는 큼지막한 별 왕관을 써서, 웃고 있는 이 아이가 공주구나 싶다. 공주 의자 뒤로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에는 집과 벽돌로 된 건물이 보인다. 집 안에는 아이 두 명이 창밖을 쳐다본다. 뒤집어진 벽돌성에 남자와 여자가 마주보고 서 있다.
아래쪽은 분홍색 테이블로 책 제목이 큼지막하게 쓰였다. 표지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알기 어렵다. 본문이 궁금해지는 표지다.
책을 받자마자 2학년 딸아이가 며칠 동안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평소 보던 책보다 글밥이 많은 편인데도 틈만 나면 열심히 읽는 모습에 재밌는 책이 분명하군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재미있었다. 이금이 선생님은 30년 이상 어린이 동화와 청소년 문학을 집필해오신 분이셨다. 글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오래 전 작가의 집 위층에 살던 자매들 때문에 탄생되었다. 저자는 낮이고 밤이고 뛰는 아이들이 당연히 남자 아이일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알고 보니 자매였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음에 부끄러웠다고 밝힌다. 게다가 자신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풀죽어하는 아이들을 보고 난 뒤부터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윗집을 마법의 공간으로 상상하며, 망나니 자매와 함께 즐겼다는 일화다.
2019년 3월 출간된 이금이 작가의 책<망나니 공주처럼>은 여자답기보다 아이답게, 자기다운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이야기는 공부하느냐 엄청나게 바쁜 앵두 공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앵두 공주는 다른 아이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한시도 쉬지 못한다. 열 번 째 생일을 맞이해서 아이들을 궁궐로 초대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공주답게 행동하느냐 갑갑하기만 하다.
뭐야. 공주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 . 불쌍하다
(p.11)
많은 독자들이 이 문장에 공감 하지 않았을까? 공주인데, 해야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없는 아이. 불쌍한 앵두공주는 며칠 뒤 민가체험에서도 공주의 품위를 지킬 일로 걱정이 태산이다.
가장 중요한 건 공주다운 겁니다. 공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공주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 p.18)
앵두공주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망나니 공주 전설 때문이다. 찔레 덤불로 둘러싸인 작은 왕국이 있었다. 그 곳 왕비가 공주를 낳다가 죽자, 너무 큰 슬픔에 빠진 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제멋대로 자라게 된다. 이들은 미치광이 왕과 망나니 공주로 불리게 되고, 백성들은 하나 둘 나라를 떠났다. 선생님들은 앵두 공주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말한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한다는 잔소리를 듣는 앵두 공주, 공부할 것이 가득한 우리 아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여운 앵두 공주.
드디어 민가 체험의 날이 밝았다. 앵두 공주가 가게 된 곳은 자두네 집이다. 거실에 공주님을 위해 새로 장만된 의자에 앉아 자두 엄마와 아빠 할머니의 쉴 새 없는 말을 건네받는 앵두 공주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자두가 그 앞에서 빽 소리를 지른다.
그만 들 좀 해!
(p.27)
게다가 방에 들어온 자두는 다짜고짜 앵두 공주에게 나도 너한테 존댓말 써야 돼냐고 묻는다. 앵두와 자두는 일주일동안 잘지낼 수 있을까? 공주다움만 강요받던 궁궐에서와 달리, 다행히 자두와 친구가 되어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앵두 공주. 게다가 미처 몰랐던 망나니 공주 전설 뒷이야기를 자두 할머니로부터 듣게 된다.
어디에도 망나니 공주가 공부를 잘했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망나니 공주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나라를 떠났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을 돌아오게 만든 사람도 결국 망나니 공주잖아
( p.77)
진짜 공주답다는 것, 앵두다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하는 앵두... 정해진 할 일을 해내던 모습에서 스스로 생각하려는 모습으로 앵두 공주는 달라진다. 결국 공부도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뭘 공부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봐야하는 것 아닐까? 앵두 공주의 변화가 반갑고, 기쁘다.
소곤소곤, 재잘재잘, 까르륵까르륵.... 날마다 자두방엔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체험 마지막 날 새벽에 일어난 앵두와 자두는 찔레 마을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 놀랍게도 망나니 공주 전설 속 흰바람과 검은새를 만나게 된다. 그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설정은 독자들에게 신선함과 재미를 선사한다. 앵두 생일날, 앵두 아빠가 왕실 대표로 축하 인사를 하는데, 아빠는 부군이고, 왕은 앵두 엄마다. 그리고 전설 속 왕자는 사냥보다는 요리와 바느질에 솜씨가 뛰어나고, 나중에는 자신의 왕위를 부인에게 넘겨준다. 뿐만 아니라 찔레 덤불에 다친 털보 왕이 억지를 부리거나, 울기만 하는 울보 왕은 어른이지만 아이 같고, 공주와 왕자는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아이와 이야기 나눠 볼 꺼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