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더 근원적으로는 내 이름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름을 잘못 지어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내 생일도 문제다. 나는 1961년 생인데, 그해 양력 5월 1일에 태어났다. 5월 1일이 어떤 날인가. 세계적으로 데모하는 노동절 아닌가. 생일도 그런 데다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박래군. 한자로는 '朴來群'이다. 눈 밝은 분들은 눈치채셨을 듯하다. '올 래'에 '무리 군'이라니. 무리가 온다? 그러면 무얼 해야 할까? 데모해야지. 나는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18p
"우리는 고참들한테 맞더라도 밑에 애들 안 때린다. 맞는 건 우리 대에서 끝내자."
그 다짐을 그는 실천했다. 고참들이 애들 '교육(기합과 구타)'을 안 시킨다는 이유로 그와 우리들을 두들겨 팼지만,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우리 소대는 구타가 없는 소대로 바뀌었다. 43p
하지만 퉁퉁 부어오른 상처보다 더 끔찍한 건 내 마음이었다. 폭력에 굴복했다는 무력감, 노동 해방을 위해 싸우는 전사가 이깟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자괴감에 너무 괴로웠다. 60p
장례 기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재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외로웠다. 76p
유가족들은 늘 죽은 자식에게 못 해준 게 많아서 미안했다. 살아있을 때 이해하고 격려해 주지 못해서도 미안해했다. 세상에 준비된 유가족은 없었다. 109p
사랑은 가슴을 뛰게 한다고 했는데, 나는 죽은 자들을 사랑한 것일까?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116p
"될 일은 언제건 되더라고." 144p
"아저씨, 저 위에서 내려오는 거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거요?" 299p
교황은 방한 중에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는 말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남겼다. 344p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던 중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가사가 들리는 순간, 갑자기 목을 메었다. 급기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1988년 동생을 잃었을 때 내 마음이 그랬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2015년 5월 17일 광주 금남로가 생각났다. 5·18 광주민중항쟁 35주년 전야제가 열렸다. 나는 세월호 유가족과 그 자리에 참석했다. 전야제가 종반으로 치달아 갈 때 도청 쪽 무대에는 5·18유가족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끌어안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5·18 유가족들 품에 안겨서 너나없이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같이 울었다. 어떤 백 마디 말보다 "니 맘 다 안다"는 한 마디의 말이 모두를 울렸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 나희덕의 시 <귀뚜라미> 중에서 363p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죽은 이들과 같이 산다, 귀신들이 나를 도와줄 거다'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런 다음부터는 때가 되었는데도 그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서운하다. 그러므로 나의 뒷배는 죽은 자들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없던 용기도 샘솟는다. '목숨 걸고 싸우다 죽기까지 한 사람도 있는데, 이깟 것'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인생은 죽은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만 그럴까?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앞서 죽어 간 이들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돌아보면, 내가 해온 인권운동은 죽은 자들이 죽어 가면서도 외쳤던 '유언'을 현실에 접목해서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436-437p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음을 잊지 말자."그래야 사람으로 살 수 있으니까. 439p
읽다가 몇 번이나 힘들어 책을 내려두었다.
책을 힘겹게 겨우겨우 다 읽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그것이었다.
내가 박래군이 아니라 다행이다. 내가 나라서 그나마 편하게 살았다. '여럿이 함께'라는 내 이름대로 살려고 나는 나 나름대로 작은 우물안에서 발버둥 치면서도 이렇게 괴로운데.
내가 박래군으로 태어났다면 나도 저렇게 살았으리라 저 괴로움을 겪었으리라 생각하니 내가 그래도 나라서 안온하게 살고 있구나, 나의 작은 아픔에 매여서만 사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부끄러웠고, 또 자랑스러웠다.
나는 나의 이름에 맞게, 나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해 여럿이 함께라는 내 이름대로 살고 있으니.
나의 눈물에도 온기가 있음을 잊느라 모든 눈물에 온기가 있음을 가끔 잊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도 느끼고 힘에 부쳐 내려놓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무감하게 읽어넘겨지지 않고 피가 뜨겁게 끓는구나 싶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고 감히 말해본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울리는 마음들이 모두 연대하는 세상이 되어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