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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소파와 까마귀
  • 뤼미에르 피플
  • 장강명
  • 15,300원 (10%850)
  • 2025-09-30
  • : 1,160

먼저, 이 책을 좋게 읽었기에. 그리고 종교도 있고 그 정도의 여유는 있기에. 김새섬 그믐대표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주십사 빈다.

801호부터 810호까지, 이렇게 모아두기도 힘들 정도로 독특한 인물들의 향연이다.

801호 슬픔이 필요해서 세브란스 장례식장 근처를 맴돌던 박쥐인간과 만난 슬픈 임산부

802호에 사는 게 힘든 여자아이 쩜이 만들어 낸 이야기 속 거지같은 상황에 빠진 남자와 모기

803호 키도 크고 꽤 잘생긴, 그리고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청각장애인 재홍과 138cm 엄지공주(와 802호 쩜)

804호 죽은 동생의 연인이 쓴 작품 「뤼미에르 피플」의 출간허락요청과 이현수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동시에 받는 나연

805호 아내와 어린자식 앞에서 돈다발로 맞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하는 재벌2세들과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느라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남자

806호 삶이 어렵지 않은 여자, 소연경과 인터넷 여론 조작기관팀 알렙의 멤버들

807호 결막염으로 인해 버려져 길냥이 세계에 뛰어든 마티

808호 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반인반서(쥐)들의 인간세상 생존기

809호 아직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복잡한 패턴을 한 눈에 인식하는 능력이 미래에는 필요할 것이라 믿으며 훈련하는 상호

810호 차기 밤섬 당주가 될 운명인 현수.

「뤼미에르 피플」은 한마디로 기이하고도 절묘한 인간 군상의 실험실이다. 801호부터 810호까지 열 개의 방 안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이 산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있지만 그 결핍은 이 소설의 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처럼 작용한다.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기이한 인물들의 연작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층위를 실험적으로 분할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읽는 내내 이건 현실인가, 환상인가를 자꾸 되묻게 된다. 그러나 장강명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이미 충분히 비현실적인 존재임을 증명한다.

「뤼미에르 피플」 의 매력은 각 호실이 완전히 독립된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이어진다는 데 있다. 슬픔, 욕망, 생존, 서사, 비인간성. 이 모든 키워드들이 서로 다른 인물들을 매개로 교차한다.

그렇기에 「뤼미에르 피플」은 실험적이고도 인간적인 세계다.

저자는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기묘한 상상의 틀 안에서 다시 비틀어낸다.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과 인간을 향한 연민, 건조한 유머가 교차한다.

장강명은 이 책에서 인간을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비인간이 되고, 또 얼마나 끈질기게 인간으로 남으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박쥐인간, 반쥐 인간, 길냥이 마티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감정과 욕망은 가장 인간적이다. 반대로 인간인 인물들은 종종 가장 괴물 같은 선택을 한다.

결국 이 작품은 ‘무너지는 시대의 인간들’을 위한 일종의 실험 보고서다. 장강명은 사회 구조 속에서 기묘하게 변형된 감정들을 해부하듯 펼쳐놓고, 그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감정의 형태를 찾아낸다.

읽고 나면 오래도록 마음 한쪽이 낯설게 쿡 찔린다. 우리역시 뤼미에르 피플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소설집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거대한 관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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