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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소파와 까마귀
  • 파사주
  • 강성봉
  • 15,120원 (10%840)
  • 2025-09-20
  • : 910

숲은 단일한 생명체였다. 하나가 아프면 다른 하나가 고통을 느끼고, 하나가 살면 다른 하나도 생명을 얻었다. 나무들은 땅에 깊이 뿌리 내리고, 가인들의 외침을 통과시키며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잎맥을 타고 흐르는 아이들의 붉은 피가 뿌리 깊이 스며들었고, 숲은 오랫동안 생명의 성전을 이어온 방식 그대로 뿌리와 뿌리를 연결하여 그것에 맞섰다. 그 순간, 신은 콘크리트 성전 안이 아니라 숲 안에 있었다. 십자가와 제단이 아니라 나무뿌리에, 가지 안에, 작은 잎사귀 안에 있었다. 254p

만약 유림에게 신이 있다면, 그건 벽돌집에서 숭배하는 절대자나 창조주가 아니라 제 안에 유유히 깃든 신이었다. 260p

잃어버린 시간들이 산기슭 너머에서 이곳으로, 죽기 전에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향해 고요히 행진해 오고 있었다. 280p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몽롱하다. 뭔가에 취해 갑자기 미로 한 가운데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파사주는 그런 책이었다. 장르가 판타지인가 싶기도 할 정도로 사건을 명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흘러간다.벽돌집에서 도망친 두 아이 해수와 유림의 이야기가 어지럽게 파악된다.

파사주의 서사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아이들, 특히 유림의 감정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기 위한 실험적인 의도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책장을 넘기며 아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사건의 전후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최대한 빠르게 멈추고 혼란스럽게 이리저리 바뀌는 이미지와 분위기들을 붙잡게 된다. 어쩌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조각난 듯한,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을 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을 감각 그대로, 감정을 감정 그대로 느끼는 것이 서툴기 때문이 아닐까. 벽돌집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 될 것인데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펼쳐지며 방어할 틈도 없이 불쾌한 감정과 감각이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 해수의 의문, 유림의 불안, 아버지 선생님이 언급되거나 등장하는 대목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역겨운 어떤 것.

앞서 읽었던 소설 말뚝들과 비슷한 인상을 받은 것은 장편 시같다는 것이다. 몽타주처럼 이어진 이미지의 폭풍, 머리로 파악하기 전에 파고드는 감정과 감각. 벽돌집에서 아이들이 겪은 체험이 역순으로 배치되어 어떤 불길하고 불쾌한 예감과 함께 그 모든 것들이 무례하게 들이닥치는 느낌이 들었다.

파사주는 독자에게 하나의 정답을 주기보다, 아이들이 겪는 혼돈과 두려움을 체험하게 만드는 미로 같은 공간에 초대하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 미로가 즐거운 탐험으로 느껴질지, 끝없는 방황으로 느껴질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제목에서, 그리고 죽기 전엔 죽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유림의 모습에서, 벽돌집 옥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간 유림의 새로운 여정은 그 모든 무례함과 역겨움, 불안과 슬픔을 깨트리고 나아가는 모습일 것을 믿어의심치 않을 수 있다.

길고 지난한 애도를 마치고 나면 그렇게 새롭게 나아가게 된다고, 죽기전에 죽지 말라고 해수와 유림이 내게 말한다. 나도 그들에게 죽기 전에 죽지 말라고,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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