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느낌이 드는 표지의 책,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검찰에 대해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아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책을 펼쳐보니 들어가는 말, 어쩌다 검찰 상식이 우리 사회의 필수 교양이 되었나.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비단 독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현대 문명은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그런데 정말로 어쩌다 검찰이 이 모양이 되어 시민들 모두가 검찰 상식에 대해 알아야 하게 되었고 우리 검찰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내가 내 자리에서 내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 검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왜 그랬던 것일까.
검찰 개혁은 '선량한 검사'가 아닌 '최악의 검사'를 전제로 출발해야 합니다. 검찰은 애초 불공정하고 정치적이며 부패하기 쉽고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최악의 검찰조차 검찰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 제도를 설계해야 합니다. 27p
딱딱하고 재미 없을 것이라는 인상과 달리 책은 아주 친절하고 술술 잘 읽힌다. 검찰개혁을 ‘최악의 검사’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지적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까마귀 무리에 백로가 들어가서 까마귀가 백로의 영향을 받는 것보다는 백로가 까마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선량한 검사, 이상적인 검사, 좋은 사람은 사실 흔하지 않다. 인간은 우리가 꿈꾸는 것처럼 이상적이고 훌륭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까마귀도 백로인 척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비단 검찰이 아니라도 도화지같던 이가 어떤 조직에 들어가 그 분위기에 물드는 일들은 비일비재하여 찾아보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잘못 기소될 경우 피고인이 입는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일수록 편파적이지 않고 공명정대해야 할 필요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80p
아니면 말고 식의 내부 고발을 당해본 입장으로 이 말에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기소되는 것만으로도 피고인에게 큰 타격이 갈 수 밖에 없고, 조사를 받고 끝끝내 무죄를 받게 되더라도 피고인의 시간과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보상받을 수 없다. 애초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부터가 매우 폭력적인 일인데, 잘못한 게 없는 상황에서 편파적이고 공명정대하지 않은 일처리를 겪게 되면 인간 문명에 대한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기소prosecurtion와 박해persecution는 영어 철자가 비슷합니다. 기소에 약간의 왜곡과 조작만 가하면 누군가를 박해하는 수단으로 변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현실과 철자법의 묘한 일치입니다. 87p
검찰권의 분산과 제한 등 구조적 검찰 개혁이 하나의 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아무리 정밀하게 제도를 다듬어도 빈틈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을 비집고 권력의 독버섯은 자라기 마련입니다. 사후적으로 독버섯을 발견하고 솎아 낼 장치가 필요합니다. 105p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기관이나 개인이 권력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기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조금씩의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이 권력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배우가 부여받은 역할을 자기 자신과 혼동하면 안되는 것처럼. 검사들 역시 자신들이 맡은 직책에 따른 권한을 적절한 견제 아래 행사해야 하는 것이지 권력이라 착각하니 작금의 상태가 된 것이 아닐까.
권력이 사유화할 때 권력 행사의 원칙은 사라지고 권력 그 자체만 남습니다. 그 권력은 더 이상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야생 동물의 포악함이 됩니다. (중략)'권력은 어디에서 오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든 권력자와 권력 기관에 뼛속 깊이 각인시켜야 합니다. 군, 검찰 등 권력 기관의 사유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도록 물샐틈 없는 민주적 통제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115-116p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서 헌법에 권력이라는 단어는 국민한테만 쓰인다고 말했다. 권력과 권한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입법과 사법, 행정은 일정기간 위임된 권한이라는 것부터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 분명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권한자들이 스스로를 권력자로 여기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이 권력이 아니라 위임된 권한이라는 것부터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검찰총장의 퇴임 뒤 공직 취임과 정당 가입을 제한하는 검찰청법 조항은 결국 위헌 결정을 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검사가 이에 대한 확고한 소신 아래 구체적 사건의 처리에 있어 공정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확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제도적 해법을 찾는 대신 개별 검사들의 소신에 맡겨두자는 것인데, 독자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118p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어떨까?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 되어버린 검찰의 모습. 임기를 마치지 않고 사퇴하여 정치에 투신하는데도 내부적으로 아무런 비판도 반성도 없이 아첨하기 바쁘다. 권한이 아닌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사실상 정말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보니 이런 모습들은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검찰 전체를 하나의 검사동일체로 묶어버렸습니다. 검찰총장 한 명이 전국의 모든 검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모든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중략) 민주 국가에서 정부 기관은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구성원 각자가 제자리에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법률에 맞게 수행해야 합니다. 각자의 자율성과 전체적 통일성이 조화를 이루는 게 성숙한 민주 국가의 공적 조직 원리입니다. 150-151p
대학과 중용에서는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더 신중하고 조심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소인에 불과하며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기에 삶을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일은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나 스스로를 경계하며 속이지 않는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스스로 경계할 수 있는 사람들도 홀로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저자는 거듭 제도적으로 이런 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검찰개혁이 되어야 함을 끈기있게 다른 나라의 검찰제도들을 소개하며 설득하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검찰이 내부 비위에 대한 처리 권한까지 독점한다면 특권 계급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내 손이 깨끗해야 남의 죄를 단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러운 손'으로 법 집행을 하는 공직자가 있는데도 쫓아낼 수단조차 없다면, 국민이 그런 공직자한테 계속 수사·기소를 당해야 한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법치주의도 더럽혀집니다. 244p
결국 이 책은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일반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도 제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길이라는 점을 다른 나라의 제도들을 소개하며 환기시킨다. 검찰개혁 뿐 아니라 우리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권한과 권력을 혼동하지 않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검찰 상식이 우리사회의 필수교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서부터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