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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소파와 까마귀
  • 말뚝들
  • 김홍
  • 15,120원 (10%840)
  • 2025-08-30
  • : 19,44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괜찮았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세상이 장에게 유독 가혹하게 구는 것 같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정말 그랬다. 121p

정말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 동요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 내가 감정적으로 동요된다면 그것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장이 느닷없이 납치를 당하고 바지에 똥오줌을 지릴 때에도 나는 멀찍이서 타인의 불행을 관람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고를 바로 하지 않았다 은근하게 책망하고 탈출하지 못한 것도 문제삼던 경위와 나는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이 문장에 눈길이 가 닿았을 때 나는 장에게 한 걸음 다가가 장의 이야기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부터 나는 괜찮았던 적이 없었고, 세상은 유독 내게 가혹하고 야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타인들은 나와 달랐는지, 타인들도 나처럼 그러한지 알지 못한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애초에 노력하지 않으면 타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렇게 외면하면 눈물이 멈추네요."

"맞아요. 울고 싶지 않으면 잘 숨어 있어야죠."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무엇을요?"

"이렇게 계속 살아가요? 말뚝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그러면 하염없이 울고?" 188p

적어도 말뚝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말뚝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쏟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러기를 포기했다. 이 소설은 아주 긴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주 긴 꿈과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뚝들은 사람의 심장에 박힌 대못같은 상처일까? 느닷없이 퍼붓다 멈춰버리는 불행일까? 그런 것도 그냥 멈춰버렸다. 생각하면 울고 싶어졌다. 이유를 모르고 감정을 느낄 때마다 세상은 나를 나무랐고, 대답할 길 없는 감정과 이해받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슬픔이 진흙탕처럼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오래 걸려서야 「말뚝들」 을 완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강처럼 흘러 한자리에 모여든 이유는 울기 위해서였다. 우는 사람은 답답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203p

사람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불행을 얼마간 가지고 있다. 누구나의 심장마다 대못같은 상처가 박혀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그에 대해 토로하지 못한다. 우리는 술에 취해 잊혀질 것을 보장받을 때에나 속얘기를 꺼내고, 만취를 핑계로나 겨우 조금 울었다. 말뚝이 내 앞에도 나타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염없이 울고 나면 답답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예전에 연기를 배울 때 선생님은 내게 이 사람들이 왜 이 말을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시덥잖은 이유들을 댔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런 말들을 굳이 왜 할까 생각했었다. 선생님은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르침은 11년을 지나서야 내게 와 닿았다.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뚝들 앞에서 사람들도 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울 수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말을 할 수 있다면 답답하지 않다.

함께 울었다. (중략) 해가 저물 때쯤 동상 받침대에 올라서 있던 말뚝들이 무슨 신호나 낌새도 없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 자리가 텅 비워 있던 것처럼. 210p

그렇게 사람들도 동물도 말뚝을 수거하러 온 사람들도 함께 해가 저물 때까지 울고 나서, 처음부터 상처받지 않았던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말뚝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직 울기도 전이지만 내 가슴에 박혀있는 대못들 중 한 두 개정도는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바로 옆 사람은 가슴을 치며 거의 통곡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열성적으로 우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합심해 가짜 울음을 울다니 믿기지 않았다. 장은 심하게 모욕당한 느낌을 받았다. 말뚝 앞에서 무너지듯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222p

그리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다시 사라졌던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고 답답했다. 가짜 울음을 우는 사람들에게 모욕당한 느낌, 조롱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장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불행의 본질은 이해할 수 없게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가끔은 불행의 본질을 이해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가짜울음소리가 다른 사람의 불행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할 때 차라리 울지 않고 무덤덤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짜로 울음을 울고 가짜로 위로한다면 그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고 조롱일 뿐이니까. 그렇다고 매번 모두에게 자판기처럼 진짜 울음을 울 수 있을만큼 내가 풍요로운가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그때의 모든 일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게 틀림없었다. 장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그에게 빚졌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빚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망해버린다. 301p

최근 「붉은 시대」와 「역사의 쓸모」를 읽으면서 큰 울림이 있었는데 이 구절에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빚져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명랑한 이기봉의 투쟁없는 짧은 삶」에서도 그랬듯이 그렇게 빚졌다는 생각으로, 자아를 타자로 삼키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빚졌다고 생각하고 무임승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망해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장석원이야. 장, 석, 원. 너희 아빠 친구야." 301p

말뚝들이 내 앞에 성큼 와 서 있었다. 장이 이름을 드러냈다. 나는 장석원에게, 김홍 작가에게, 「말뚝들」에 빚을 졌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비로소 울 수 있었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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