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슬퍼하며
m 2023/04/2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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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오브 차이니즈 SF : 중국 여성 SF 걸작선
- 시우신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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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0) - 2023-04-10
: 441
우리 오늘은 이미 오래된 상상 속에 들어서있지만, 접하는 소식에 의하면 전래된 픽션 속 디스토피아에 보다 밀접한 현실을 살아가는 듯한 중국인들은 어떤 sf를 쓸까. 그러나 읽을 수록 옛사람 기준 sf라 할만한 글들이 현대작가에 의해 새로 쓰여진 까닭과 이들이 왜 sf란 장르로 한데 엮였는지에 의문이 들었다. 중국 sf의 여명이 구세계로부터 해방과 사회개혁의 모색이었고, 남성작가가 미래정신을 담는 그릇으로써 여성화자를 내세웠다는 역사적 배경은 이러한 지면을 가늠하기에 의미있는 해설인 것 같다. 옛것을 부정하지도 얽매이지도 않는 주변화된 정체성은 기나긴 시간선으로 상상의 그릇을 옮겨가며 종래 모든 존재가 윤회하게 될 허구의 기원부터 꿈 속의 과거, 미래의 환상을 마주하며 가능한 현재를 탐색한다. 일상적이며 보편적인 불안과 희망을 면면히 느끼며… 우리는 어떤 운명을 쌓아가고 있을까. 변화 속에 어떤 정체를 겪고 있을까. 그 시절 서호의 설경처럼 앞모르는 꿈을 꾸고, 베네카의 기억에서 지구 기후를 걱정하고, 추월자의 작문에서 ai챗봇 윤리필터를 위해 착취된 노동자들을 생각한다. 때로 게으르며 슬퍼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우리와 살아갈 초지능이 그 또한 할 줄 알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이러저러한 것을 제쳐두고도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재미있었다. 해설처럼 신화와 민간전통 색채는 노스텔지어적 회귀일 수가 없다. 그것은 중국인에게 장대한 시간의 문화와 정신을 관통하는 알고리즘인 것 같다. 반려별에게 이백과 두보를 읽어주는 초등학생, 설날 대문 앞에서 태우는 다발폭죽, 주나라식 점이라도 친 듯 아우가 올 줄 알았다는 도행자, 옥이라면 지나치는 법이 없는 시선들, 이름과 이름을 이어 쌀을 흔들고, 향을 피우고 토란을 구워먹고, 빛의 속도로 헤아리는 아득한 시공에서도 때를 기다리며 오래된 요리법을 간수하는 모습에 미소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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