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협찬 #그심리학과생의책꽂이
#책추천 #책후기 #book #쉰일곱번째📚

바른생각 바른생각 <#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 삼가 경의.” 이것으로는 알려 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어제였을 것이다.
로 시작하는 유명한 글. 세계문학의 담론을 바꿔놓고 실존문학의 장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만큼 유구하게 일관적으로 어쩌라고 싶은 글이 있을까 싶다. 뭐지 얘는 ASPD인가? APD인가? 그냥 분노조절이 안 되나? 실존과 부조리는 무슨 얘기람?
이방인을 가지고 쓴 엄청 많은 척척박사들의 논문과 책과 자료들이 있지만 차마 그걸 다 읽어볼 자신이 없어서 패스.. 글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의미지만 글 자체가 어려워서 더 힘들었다.
-
이방인이 이렇게 두꺼울 이유가 있나? 정말 두껍네. 라고 생각했는데 책의 1/3이 미주 주해와 해설이다. 문장마다 문단마다 주석이 달려 있어서 문단이 담고 있는 철학적 의미, 시대적 배경, 번역하면서 바뀐 부분 또는 신경쓴 부분 등을 알 수 있다. 문장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은 지금을 이야기하고 또 어느 부분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듯해서 헷갈리는 데가 많았는데, 따로 찾아보거나 할 필요 없이 책 뒷면의 주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번역이 다른 글보다 매끄럽다. 띄어쓰기나 오탈자로 추정되는 것들이 간간히 보이긴 한다. 심심해서 가진 #이방인 을 다 꺼내서 댜 읽어보고 비교해봤다. 시간이 남아 돌지 아주.
“마치 신호와 별로 가득한 이 밤 앞에서 이 엄청난 분노가 내 고통을 정화하고 희망을 비워 내기나 한 것처럼,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세상이 나와 아주 닮았음을, 결국 형제 같음을 경험함으로써 나는 내가 행복했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행복함을 느꼈다. 모든 게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하려면, 내게 남은 일은 나의 사형 집행일에 구경꾼이 많이 와 주기를 바라는 것, 그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김진하, 2020, 을유문화사)
● 회고적이고, 뭔가 큰 깨달음을 얻어서 눈이 반짝거리는 미친놈 같다. 이런 애들이 뮤지컬 나오면 죽던데.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이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이 처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이 나와 다름없는 형제 같았으니, 나는 그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성취되고 내가 사형 집행을 받게 되어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에 찬 아우성으로 날 맞아주기를 바라는, 내게 남은 그 소원이 이루어질 때, 나는 비로소 외롭지 않으리라.”(김민준, 2019, 자화상)
● 저항시인 같다. 압제에 대항하고 마지막으로 광야에 내 노래의 씨앗을 흩뿌리려는 사람같은 느낌이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모든 고통을 씻어 주고 희망을 없애 버리기나 한 듯 온갖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가 가진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모든 것이 완성되고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질 수 있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베스트트랜스, 2012, 더클래식)
● 문장이 길다. 약간 느낌이 헤세 같아서 뭔가 큰 깨달음을 가지고 게시군요.. 알겠습니다,, 싶음.
이런 해설이랑 주해가 이 시리즈의 공통점이라면 다른 책도 몇 권 읽어보고 싶다!
(아마 고등학생 때 읽었으면 담임쌤이 엄청 싫어하셨을 것.)
-
“배심원 여러분, 자기 어머니가 죽은 다음날 저 사람은 해수욕을 했고, 비도덕적인 남녀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희극 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렸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더 이상 없습니다.”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규범 아래에서 나와 같은지 다른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는 믿음 역시 틀림없는 사실일까? ”감히“ ”남들과 다르게“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담배를 태웠으며 심지어는 상중에 희극 영화를 보고 부적절한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를 천하에 없을 비도덕적 인간으로 낙인 찍고, 이 판단을 아주 이성적이고 멋진 판단이었다고 한다. 과연?
”뫼르소는 그 우발적인 살인의 이유에 대해 법과 도덕의 명분으로 합리적인 이유를 대지 못함에 따라 악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뫼르소가 보기에 인간의 삶에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과 불명확한 감정, 예기치 못하는 감각들이 언제든 끼어들 수 있다. 이성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만으로 삶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삶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
“그러면 결국 저 사람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것으로 고발된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죽인 것으로 고발된 것입니까?” 청중이 웃었다. 그러자 검사가 다시 몸을 일으켜 법복을 고쳐 입으며 이렇게 진술했다. 이 두 부류의 사건 사이에 뿌리 깊고,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련이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건 존경스러운 변호인이 순진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검사는 힘주어 외쳤다. “그렇습니다. 저는 범죄자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저 인간을 고발하는 바입니다.” 그 진술은 청중에게 엄청난 효과를 끼치는 것 같았다.
심리학에는 착각적 상관(Illusory correlation)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 관련 없는 것에서 관련성을 지각하거나, 관련성이 아주 조금 고양이 털만큼 있어도 실제보다 더 강하고 끈끈하게 관련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관련성이 있다고 믿으면, 이를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예시를 떠올리고 실제로 있는 사례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아니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까지 벌어진다. 검사가 발언하자 논리에 딸려 가는 배심원들의 모습에서는 동조 현상까지 볼 수 있다. 재판장에서 아주 신나는 인지체계의 옥토버페스트가 벌어지는 중인갑다.
사람을 죽였다는 법리보다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이 재판의 근거가 될 수 있나? 물론 고의성과 참작 여하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질문은 우발적인지 계획적인지는 관심도 없고 얘가 얼마나 쓰레기인가 아닌가에 더 관심을 가지잖아. 뫼르소의 존재는 그냥 생겨나서 존재하는 건데, 저 사람이 우리와 어떻게 얼마나 다른 무뢰한인지를 찾아내려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문제일지 모르겠다.
* 이 글은 #을유문학사 에서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알베르카뮈 #뫼르소 #문학 #고전문학 #베스트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을유세계문학전집 #해설은 #김진하교수님 #불문학 #프랑스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