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포르노에 대해 아시나요? 감동 포르노는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비장애인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합니다. 기계 팔다리를 이식받거나 색맹 안경을 쓰는 장애인들이 등장하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김초엽, 김원영 두 작가는 모든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되길 원한다는 저 시선을 지적합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생각과 달리 자신의 상황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사물을 파악하는데 눈보다 더 훌륭한 신체가 있을 수 있지만 비장애인들이 눈을 불편해하지 않듯 장애인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을 잘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건 비장애인인 자신과 다른 그들의 신체를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장애가 불완전하고 열등하다면 그러는 비장애인은 완벽한 신체를 갖고 있나요? 인간은 약합니다. 단단한 것에 부딪히면 몸이 부서지고 질병에도 쉽게 걸리죠. 물고기처럼 물에서 숨을 쉴 수도, 새처럼 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쇠처럼 단단하지 못한 몸을 장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날개가 없음을 장애라고 하지 않으며 아가미가 없음을 장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의 모습을 강요하는 건가요.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장애 유무의 차이가 오른발, 왼발 중 어느 다리를 먼저 내딛는지의 차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장애는 생활 속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불편함은 장애의 기본값이 아닙니다. 그 누구의 신체도, 살아가는 데 불편해야 한다는 가치판단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교해 유독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비장애인만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점자 블록을 만드는 것도, 버스 출입구를 계단으로만 만드는 것도 모두 인간이 하는 것이니까요. 김보라 감독의 추천사처럼, 이제는 장애를 ‘결여’가 아닌 ‘압도적인 고유성’(6p)으로 받아들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