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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sc0723님의 서재
  • 버터
  • 유즈키 아사코
  • 16,020원 (10%890)
  • 2021-08-25
  • : 2,690

『버터』는 2009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수도권 연속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 기지마 가나에를 모델로 한 소설입니다. 그녀는 세 명의 남성과 교제하면서 금품을 갈취했으며, 그들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기지마 가나에는 이 책에서 가지이 마나코로 다시 태어납니다. 주간지 기자 리카는 가지이와의 면회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과거를 추적해갑니다.




『버터』을 읽는 내내 실을 공 모양으로 꽁꽁 묶어둔 듯한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이 어떤 경로로 움직여 이 공을 만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하염없이 엉켜있지만, 짧게 튀어나온 실의 끝부분을 더듬으며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지이는 실뭉치 속에서도 가장 단단히 엉켜있는 부분이었죠. 가지이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인물이며, 어떻게 이토록 엉킨 것인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로 꼬여있는 부분입니다.





가지이의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가지이의 외모에 주목합니다. 소위 ‘꽃뱀’이라 불리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견의 이미지와 달리 가지이는 평균의 외모였으며 몸매도 통통했기 때문이죠. 남성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며 페미니스트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지키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살을 빼려는 강박에 빠지지 않죠.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가치관들이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 이유를 깨닫고 그녀의 모순에 긍정하게 되죠. 어떻게 풀어낼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야기가 조금씩 풀려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저를 압도했습니다.




책에서 지적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성별에 대한 불합리한 시선입니다. 여성들은 집안일을 강요받으며 남성을 보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웁니다. 특히 요리는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는 영역입니다. 리카의 남자친구 마코토는 리카가 만든 케이크를 먹은 뒤 케이크의 상큼한 맛이 엄마의 맛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이에 리카는 “레몬 껍질이야, 그거. ‘엄마의 맛’이 아니라, 그냥 레몬맛.”(221p)이라고 답하죠. 가사노동은 오롯이 여성인 어머니의 몫이었기에 엄마의 맛이라고 착각한 것뿐입니다. 리카는 가지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며 ‘누군가를 위한’ 요리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시작합니다.




동시에 작가는 이런 가치관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말합니다. 가지이와 교제한 뒤 죽은 세 남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고로 사망합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자살이나 사고로 유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한 것이라곤 더 이상 그들의 곁에 있지 않았던 것뿐인데 말이죠. 그들을 죽인 건 가지이나 그녀가 떠난 뒤의 고독이 아니라 수치입니다. 남성은 여성들에게 모성을 찾고, 보살핌과 다정함을 바라는 것이 마땅하다는 세계에서 남성으로 대우받고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수치.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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