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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sc0723님의 서재
  •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마이크 브라운
  • 18,000원 (10%1,000)
  • 2021-04-05
  • : 2,401

하늘을 관찰하고 새로운 천체를 찾는 천문학자의 과업은 19세기에 거의 끝이 납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심채경을 비롯하여 현재의 천문학자 대부분은 별을 찾기보다는 관측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천문학자라고 하면 별을 찾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별을 찾는 마이크 브라운은 천문학자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 태양계 행성의 순서를 외우기 위해 되뇌던 주문이 있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과학 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주문을 외웠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의 주문은 조금 짧아졌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 짧아진 주문은 어색했고 1년이 11월까지라고 강요받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주문이 망가져 버린 이유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의 중심은 과학 개념이 아니라 마이크 브라운 자신입니다. 새로운 행성을 찾겠다는 열망을 가진 주인공. 첫 도전이 실패로 끝난 뒤의 좌절. 여러 시도 끝에 얻어낸 성과들. 기성 규율과의 대립. 세상의 변화. 여기에 주인공의 업적을 가로채는 악당(?)까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형태로 과학을 설명하며 관련 지식이 부족한 저도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꾸밈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이 이토록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더불어서 말이죠. 과학 지식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마이크 브라운이 명왕성을 ‘죽이는’ 과정은 끈질깁니다. 명왕성이 행성으로 남겨질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왜소행성’이라는 새로운 분류 개념도 거부하죠. 명왕성을 행성에서 제외하려는 모습은 정말 살아있는 무언가를 죽이는 모습 같습니다. 누군가를 물웅덩이에 얼굴을 거칠게 밀어 넣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온몸은 몸부림을 치고 자신의 얼굴을 누르고 있는 그 손을 부여잡으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그 손은 흔들리지 않고 손에 잡힌 그것을 계속해서 주욱 밀어낼 뿐입니다. 자신 앞에 있는 존재는 명백히 죽어가고 있지만,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그 손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이크 브라운은 한 천체를 발견했고 제나라는 그가 발견한 에리스는 명왕성과 비슷한 천체였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명왕성보다 더 크다고 알려졌죠. 문제는, 관측 기술이 발달하며 이들과 비슷한 천체들이 수없이 발견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에리스가 행성이 된다면 이후 발견되는 천체들도 행성으로 편입해야 할 것이고, 근 100년간 9개뿐이었던 태양계 행성이 순식간에 수백 개로 늘어날 것입니다.


마이크 브라운은 행성을 발견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흥분했지만 이내 에리스는 행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에리스가 행성이 아니라면, 명왕성도 행성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다른 행성들보다 크기도 작았고 공전 궤도의 축도 달라 원래 ‘애매한’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그렇게 에리스의 등장으로 행성에서 퇴출됩니다. 에리스가 등장하며 그냥 그렇게 되었던 것뿐이었습니다. 학문에 대한 소신과 질서를 위해 열 번째 행성의 발견자이자, 유일하게 살아있는 행성 발견자라는 명예를 포기한 마이크 브라운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


원제를 잘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원제는 <How I Killed Pluto and Why It Had It Coming>으로, “내가 어떻게 명왕성을 죽였고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가”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너무 길어 독자들의 기억에 남기 어렵기에 제목을 줄이는 과정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줄인 것이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입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가’는 부연 설명이었기에 중심 제목인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만 남겼고 How를 ‘어쩌다’로 번역한 것도 마치 무언가 얼렁뚱땅 일어난 일인 듯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표지가 조금 밋밋해 보입니다. 명왕성과 명왕성을 품는 듯한 손 모양은 조금 어색합니다. 명왕성의 외형은 달이나 토성처럼 특징이 강하지도 않기에 독자들의 기억에 강렬히 남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합성 등을 통한 마이크 브라운의 머그샷이나 수배지, 혹은 명왕성을 의인화한 이미지를 만들어 사건 현장처럼 꾸미는 방식이었다면 독자들의 흥미를 조금은 더 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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