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출간된 지 20년이 흐른 책이지만 여전히 그 내용은 생생하며 주인공 산티아고의 고뇌는 지금의 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마음은 책이 출간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아마 꽤 먼 미래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고민을 하고 있겠죠.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현재에 만족할 것인지. 혹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나아간다면 내 앞의 수많은 길 중에서 올바른 길은 어디인지. 인간은 결국 이 모든 고민을 온전히 떨쳐낼 수 없다는 사실에 잠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슬기롭게 넘기는 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술사』는 우리의 불안을 조금은 덜 수 있는 길을 안내해줍니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납니다. 대신 그는 그동안 가져왔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키우던 양들을 팔아야 했고, 수년간 살아온 동네를 떠나야 했으며, 한 여자를 볼 때마다 느꼈던 설렘도 포기해야 했죠. 그리고 표지(標識)를 따라 보물을 찾으러 떠납니다. 그럼에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면 주변에서 ‘마크툽’이란 말을 건네주죠. 마크툽은 ‘이미 씌어있는 말이다’, 혹은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미래를 개척하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요? 누구나 때로는 운명을 개척하거나 극복하는 것에서 오는 희열보다,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걱정 없이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편안함이 더 필요한 날이 있으니까요.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247p)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이란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여 삶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쉽지 않겠죠. 하지만 인내와 도전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금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연금술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산티아고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동시에 현재에 안주하는 이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티아고에게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는 방식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꿈이란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해주는 기둥입니다. 산티아고도 이내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101p)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물의 형태와 이를 바라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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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지 못한 유명한 책을 찾아서 읽어보자는 생각을 한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른 책입니다. 100쇄 기념 에디션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을 했습니다. 종교 경전이 떠오르는 듯한 고급스러운 표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난 뒤부터 온 세상이 던져주는 표지(標識)를 따라 나아갑니다. 자신이 어떤 순간에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산티아고는 이 표지를 따라 나아갑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표지들을 비롯해 ‘마크툽’이라는 말들 모두 신의 말씀 같았습니다. 방황할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제게 던져주는 말씀이었죠. 그 말씀을 담은 이 책은 저에게 경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내가 방황할 때 걷는 걸음을 다시 바로잡아주는 존재가 있음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연금술사』의 기본판이나 리커버 판을 이미 소장하신 분들에게도 꼭 이번 100쇄 기념 에디션을 사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