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chosc0723님의 서재
  •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 마크 포사이스
  • 15,120원 (10%840)
  • 2020-09-07
  • : 7,84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튜버 ‘겨울서점’ 님의 소개 영상으로 이 책을 읽겠노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소개해준 책을 읽는 걸 무슨 다짐까지 하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겨울서점 님의 영상을 보면 다들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겨울서점 님 영상에서 이 책의 서문을 읽어 주시는데요, 작가는 비스킷의 어원을 물어보는 친구에게 비스킷과 관련된 수많은 어원과 사건을 설명해줍니다. 친구가 그만하면 됐다고 도망가는 와중에도 그는 친구를 쫓아가며 자신의 지식을 ‘폭발’시키죠. 작가가 스스로 자신에게 어원을 묻는 걸 ‘실수’라고 표현했는지 십분 이해가 됩니다. 이토록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을 보는 건 즐거우면서도 동기부여가 되고, 그 사람의 글을 더 읽고 싶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책 전문에서 내내 보이는 작가의 위트는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다짐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줍니다. 먼저 말했듯 자신의 설명을 듣지 않으려는 친구를 쫓아가며 설명하는 모습이나, 창간호 때부터 꽤 오랫동안 한 신문의 지면에 특정 키워드가 빼곡했다는 설명에는 “그런 기사가 몇 건이나 되는지 제가 세어보다가 포기했습니다”(207p)라는 각주를 다는 등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작가는 수많은 어원을 알고 있겠지만 이 책에 담은 어원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흥미를 자극합니다. 히틀러가 나치라는 이름을 싫어했든가, 블루투스는 과거 어떤 인물의 치아가 푸른색이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등, 이게 정말 사실인가 싶어 읽는 도중 검색 사이트를 수도 없이 열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나면 그 기원이 놀라우면서도, 이걸 알고 있는 작가나 언어학자들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하죠.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능력 또한 감탄스럽습니다. 슬라브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흑인들의 ‘Hey, man’이라는 인사로 끝맺어지고, 다시 영화 ‘터미네이터’로 이어집니다. 읽는 내내 이야기가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죠. 하지만 그 과정은 분명 논리적이고,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흥미롭습니다. 가장 마지막 챕터에서는 사슴을 뜻하는 ‘buck’에서 시작했다가 가장 첫 챕터를 열었던 단어 ‘book’으로 다시 이어지며 말줄임표와 함께 그의 설명은 다시 무한히 이어집니다.

 

제목과 표지가 조금 아쉽긴 합니다. 책의 원제는 <THE ETYMOLOGICON>으로, 번역하면 <어원사전>이죠. 딱딱하지만 내용 자체에 충실한 제목입니다. 한국에서는 <걸어 다니는 어원사전>으로 출간됩니다. ‘걸어 다니는’이라는 수식어는 조금 엉뚱했습니다. 책과 ‘걸어 다니는’이라는 표현은 호응이 잘 되지 않아 보이거든요. 내용이 아니라 작가를 지칭하는 제목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목은 책을 지칭할 것이라 여기기도 하고, 내용도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었기에 직관성이 조금은 낮지 않았나 싶습니다. 흥미를 유발하는 제목도 아니었고요. 그러면서도 표지는 사전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디자인입니다. 알파벳이 걸어 다니는 표지인데, 인문도서보다는 어원 중심의 영단어장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점을 말했지만, 앞서 적은 책의 장점들은 단점을 덮어버리기 충분합니다. 흥미로운 내용과 위트있는 표현, 그리고 그 모든 걸 잘 살려준 번역까지.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