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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sc0723님의 서재
  • GV 빌런 고태경
  • 정대건
  • 12,150원 (10%670)
  • 2020-04-20
  • : 4,45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즐거움을 얻고 주변의 인정까지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죠. 하지만 우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무얼 해야 하는지는 이미 꽤 오래된 논쟁이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일을 해야지’라며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많았는데요, 사회에 나가 똑바로 서서 버티기도 힘겨운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무책임한 말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GV빌런 고태경』의 혜나는 영화감독입니다. 지금까지 만든 독립영화 두 편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죠. 혜나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통해 서로 다른 길을 나아갑니다. 태경은 젊었을 적 영화사에서 감독 제의가 여러 번 들어왔지만,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모든 제안을 거절했죠. 이후 그는 수십 년간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반대로 혜나는 무턱대고 기회를 잡은 일을 후회합니다. 급하게 자리가 난 영화제작 과정에 참여했고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원찬스>는 흥행에 완전히 참패하죠. 이 영화는 한동안 내내 그녀의 발목을 잡습니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 그들을 그 길 위에 세운 것은 각자가 내려온 선택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때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도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영화판을 아예 떠난 승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승호는 내가 사랑하는 걸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걸 더 사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202p)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나를 즐겁게 한 영화지만 어느새 자신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영화사 관계자들도 싫었겠지만, 그만큼이나 영화도 미워졌을지도 모릅니다. 승호가 영화감독을 포기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미워하게 되지 않고, 잘 아껴주어 내게 힘이 되길 바란 선택입니다.

 

영화 아카데미의 박원호 교수는 혜나에게 ‘감독은 선택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선택에는 정답도 없고, 그래서 어렵지’(34p)라는 말을 건넵니다. 우리는 나의 삶이란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죠.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의 기준에 부합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요.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손에 달렸고 그 수많은 선택지 중 오답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방향만 다를 뿐입니다. 우리 모두 훗날 자신과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과 비교하며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GV빌런 고태경』은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작가의 영화감독 경력은 소설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듯 합니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상황들을 머리에서 그리며 읽는데, 이 책은 유독 그 상황이 구체적이고 흥미롭게 그려졌습니다. 소설을 전부 읽고 나니 마치 소설의 형태를 한 시나리오를 읽은 기분에 가까웠습니다. 순간순간의 묘사는 마치 영화의 연출이 떠올랐고 태경의 마지막 대사는 잘 만든 영화의 엔딩 같았죠.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었던 것만큼 이야기의 흡입력 또한 좋았습니다. 


책의 표지도 이런 기분을 한 층 더 높여줍니다. 책의 표지는 마치 영화 포스터 같습니다. 중앙에는 태경을 표현한 듯한 인물과 각종 영화 관련 물품으로 시선을 모았고, 그 위아래에 소설의 제목과 태경의 트레이드 마크 대사를 배치함으로써 『GV빌런 고태경』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완성했죠. 텍스트를 통해 영상을 본 기분이라니. 신기하고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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