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홍루몽>을 읽은 건 2019년 겨울부터 그 다음해 봄까지였다. 2년이나 지나간 지금 이 책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를 읽으면서 기억을 되돌려 보면 <홍루몽>에 관해 가장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읽어가면서 점점 그 미묘하고 아기자기한 일상에 사르르 매몰되어 갔다는 점이다. 모르긴 몰라도 유불도에 도통한 듯 다양한 지식들이 언뜻언뜻 비치며, 곳곳에 주렁주렁 걸린 한시들. 한자나 중국어를 몰라 번역된 한글로만 읽었지만, 시집을 읽듯 차분한 호흡으로 읽다보면 정말 아름답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는 장편이었다. 그런데 그 <홍루몽>을 3년이나 꼼꼼하게 씹어 소화시키듯 읽은 저자가 이 책,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를 써냈다니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내돈내산 후기임을 밝혀둔다. ^^
<홍루몽>에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거의 10년 가량의 세월을 날마다 묘사하는 느낌이니, 정말 다양한 방향에서 작품을 볼 수 있을 거 같다. 오죽하면 <홍루몽>을 연구하는 '홍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을까 싶다.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는 홍루몽 속에 보이는 인물들의 삶 속에서 그 사이를 흐르는 정에 촛점을 맞추었다. 책의 부제가 '무한한 정과 무상한 생의 이야기'이다. 특히, 보옥을 중심으로 한 마지막 챕터에 가면 저자의 보옥을 향한 살뜰한 애정이 느껴진다. 보옥은 여자 아이들을 좋아하고 여자들의 삶에 관심이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삶 속의 아름다운 것들을 향해 열린 마음이다. 세속의 출세와 욕망은 보옥이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 책<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를 읽으면 그 점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며, <홍루몽>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홍루몽>을 이미 읽었다면, 혹시 놓쳤을지 모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홍루몽>에 관심있다면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를 추천한다. 솔직히 말하면, <홍루몽>보다 재미있다!
"조설근의 친구가 말했듯 '한 글자 한 글자가 피눈물'인 『홍루몽』엔 한가하게 그냥 들어간 글자는 하나도 없다.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병든 자식의 약값도 구하지 못했던 조설근이 풍요롭고 한가한 시절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하다니! 이 하늘과 땅만큼의 간극을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간절함이었을 터, 나는 누구보다도 그런 장면을 빨리 넘겨 버렸었던 사람으로서 그 간절함이 내게 가르쳐 주는 의미를 탐구해 볼 수 밖에 없었다." - 31p.
= 사실 내가 읽었던 청계에서 출판된 12권 짜리 <홍루몽> 전집 중 처음 두 권은 나 역시도 설렁설렁 빨리 읽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점점 진행될수록 어랏, 이렇게 읽을 책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고,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책장을 펴면 혹여나 나의 숨소리가 보옥이와 책 속 인물들에게 방해될까, 숨쉬기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이 문장에서 난 나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12권 중 4권 정도 읽을 때쯤부터는 책을 읽던 내 호흡이 한없이 느려지고 책 속인듯 꿈 속인듯 그렇게 읽었다. 조설근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현실과 꿈 속의 경계를 넘나들며 간절함을 담았던 것은 아닐까.
주절주절 쓰다보니 다시 마음이 아릿~해진다. 이 책 덕에 읽은지 2년이나 지나서 다 휘발되어 날아갔다고 생각했던 <홍루몽>에 대한 기억이, 시간이 흐른만큼 더 아련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언젠가 <홍루몽>을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조심스럽게 숨을 죽이고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양한 인물들과 이 후기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아련하고 그리워진다. 솔직히 이 책 <대중지성, 홍루몽과 만나다>가 <홍루몽>보다 재미있었던 거 같은데, 묘하게 <홍루몽>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조설근의 친구가 말했듯 ‘한 글자 한 글자가 피눈물‘인 『홍루몽』엔 한가하게 그냥 들어간 글자는 하나도 없다.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병든 자식의 약값도 구하지 못했던 조설근이 풍요롭고 한가한 시절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하다니! 이 하늘과 땅만큼의 간극을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간절함이었을 터, 나는 누구보다도 그런 장면을 빨리 넘겨 버렸었던 사람으로서 그 간절함이 내게 가르쳐 주는 의미를 탐구해 볼 수 밖에 없었다."-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