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문을 닫듯이 마음을 닫아버리면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의 불길로부터 안전했다. 하지만 그해 봄에는 그 문이 더는 내 힘으로닫히지 않았다. 슬프다거나 괴롭다는 감정보다도 내 마음 하나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먼저 일었다. 처음에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으니까. 책을 읽고 산책하고 샤워하고 음악을 듣고 운전하고 수영하고 일에 몰두하고 심호흡을 하고 일기를 써도, 그렇게 내 마음을 ‘정상화‘할 수 있는 모든 버튼을 누르고 조종간을 건드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마침내 내가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은 한밤중에 전소한 헛간처럼 무너져내렸다. 대가를 치르는 거라고,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생각나? 너네 삼촌이 항상 물어봤었잖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하자 갑자기 목이메었다.
"소리야, 뭐하고 싶어? 네가 아무거나, 라고 답하면………."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눈을 꼭 감았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