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정치적 민주주의가 만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적 자유 시장 또는 합리적 시장 경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즉 자유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 민주화론의 근저에 깔린 진보적 자유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의 한 변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1인 1표인 정치적 민주주의와 1원 1표인 경제적 자본주의의 관계는 늘 팽팽한 긴장과 대립 속에 있는 만큼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통제된 시장, 통제된 자본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시장을, 특히 금융시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금융위기를 막을 수 없으며, 심각한 빈부 격차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러한 과제에 실패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로 전락해 형식만 남게 되고, 국민의 삶은 실질적으로 시장과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는 ‘진보적 자유주의’였음을 자부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절실하게 체험했던 바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결코 평탄하게 실현된 것이 아니다. <비그로포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저)에 나오듯이 그것은 193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거의 반세기 가까이 온갖 정치․경제적 논쟁과 대립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스웨덴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재벌 문제와 노동 문제, 복지 문제 등 다양한 정치․경제적 문제들에 직면했으며, 그에 대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는 모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 서로 대립되는 이념적 사조들은 스웨덴의 복지국가 형성 과정에서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대립했다.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 스웨덴은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빈부 격차 심화와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의 주원인이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재벌과 관치, 토건주의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한 여러 가지 경제 문제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우리 경제가 나아갈 보편적 복지정책을 제시한 책이다.
우리는 왜 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하는가?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다
한국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나쁘지만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란 식의 인식이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거죠. 이른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자유주의 혹은 합리적 자유주의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자, 사회적 자유주의자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볼 때 그분들의 주장은 대부분 한국의 노동자, 시민이 아니라 국내외 금융 자본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정책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이런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고 그 경우 우리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내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진보의 착각 때문
진보적 지식인 집단 전체가 재벌 개혁, 관치 금융 폐기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진보로 믿고 지지했기 때문에 실패한 겁니다. 이런 정책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우리나라를 양극화로 몰고 가는 원인이라고 우리가 주장해 왔음에도 말입니다.
좌파 신자유주의 대 우파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정경 유착과 그에 따른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공격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에서 오히려 부패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요. 인도의 경우 과거 국가가 경제를 통제할 때 부정부패가 많았다면서 1990년대에 국가의 시장 개입을 막는 자유화 정책을 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를 보면 자유화한 다음 부정부패가 더 늘어난 걸로 나와요. 신자유주의라는 게 오히려 부패를 늘리는 경향이 있는 거죠.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완전 경쟁 시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국가가 떠나면 민간의 누군가가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이용해 좋지 못한 일을 벌이게 됩니다. 부정부패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겨 가는 거죠.
이제는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할 때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위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이를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합니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99퍼센트가 나서자!
이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은 1970년대에 싹을 틔웠고 1980년대에 만개해 무려 30년 동안 세계를 강고하게 지배해 왔습니다. 심지어 이 시스템은 한국에서 보듯이 정신적으로 보수파뿐 아니라 개혁적 지식인들까지 포섭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따라서 한국에 바람직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후 10년을 보고 새로운 힘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복지와 무관하다
금융 위기의 주범, 금융 자본의 항변은․․․
요즘 미국과 유럽의 보수 세력은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가 복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말합니다. 실제로는 그들이야말로 이번 금융 위기의 발생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정작 금융 위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번 금융위기를 일으키기라도 한 양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복지 혜택을 줄이겠다느니 세금을 더 내라느니 하면서요.
그리스, 복지가 아니라 유로존이 문제다
유럽 전체 차원에서 비교해 볼 때 그리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같은 남유럽 나라들은 오히려 복지 시스템이 허약한 곳이에요. 따라서 이들 나라의 재정 위기는 복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비롯된 겁니다. 심각한 불경기가 닥치자 정부의 세수는 크게 준 반면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금융권에 사상 최대의 공적 자금을 수혈하다 보니 재정 적자가 심각해진 거죠.
한마디로 유럽의 재정 위기는 복지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2009년까지는 지은 죄 때문에 납작 엎드려 있던 국제 자본들이 남유럽에 재정 위기가 현실화되니까 정부 때문이라고 억지를 쓰면서 엎어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복지 정책을 너무 많이 시행해서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만들어 자기들이 원하는 걸 챙기자는 전술이죠.
유로존의 경우 유로화로 통합된 화폐 체제에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에 유럽의 재정 위기가 쉽게 수습되지 않는 거니까요. 화폐 측면에서 보면 유로존은 하나의 통일 국가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금도 따로 거두고 복지 정책도 나라마다 달리하고 노동 정책과 경제 정책도 각자 알아서 하는 식으로, 서로 완전히 독립적인 나라들입니다.
실제로 유로존 회원국이 아니었던 아이슬란드는 금융 위기 발발 이후 자국의 통화 가치가 폭락한 덕분에 요즘 조금씩 경제 상황이 개선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리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유로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통화도 평가절하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제약이 있는 데다 재정 긴축까지 해야 하는데,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겠어요.
18세기 이데올로기에 세계 경제가 무너진다
18세기 유럽인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은 검약하지 않은 자의 도덕적 결함 때문이라고 청교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너무 놀고 낭비했거나 아니면 남을 속이기 좋아해서 가난해진 거라고 믿는 거죠. 이렇게 가난을 윤리 문제로 환원시키다 보니 금융 위기가 벌어져도 그 원인을 윤리적 결함에서 찾아요. 시스템적 위기라는 개념은 나올 수가 없는 거죠.
그리스가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에 비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EU 내에서의 자유 무역 때문이에요. 유럽 경제 통합의 기본 아이디어는 회원국들이 서로 무역 및 서비스 시장을 활짝 열면 EU와 유로존 전체에서 생산성이 골고루 발전해 공존공영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유무역 체제가 형성되면 무역 상대국들의 생산성이 골고루 발달한다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EU의 경우 노동력이 상대편 나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까지 허용되니 자유 시장 이론이 잘 작동해 각 나라의 생산성이 고루 성장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밖에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아무리 법적으로 그리스에서 독일로 이민을 무제한 허용한다 해도 언어 장벽 등 한계가 많아 노동력이 실제로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어려우니까요.
양적 완화, 왜 효과를 거두지 못하나?
미국의 경우에도 단지 양적 완화로 돈만 풀 게 아니라 그 돈이 반드시 생산적 대출에 사용되도록 은행들에 대한 대출 규제 정책을 병행해야 했어요. 예컨대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의 일정 비율 이상은 반드시 중소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하도록 하고, 국제 선물 시장 같은 데에는 쓸 수 없도록 강력하게 통제했어야죠.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이 양적 완화로 얻은 초저금리 자금을 한국 같은 동아시아 증권 시장에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내려가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경제를 살리려는 미국 정부의 양적 완화 자금이 이렇게 미국을 벗어나 제3국의 주가나 올려놓는 현상을 막으려면 미국 정부도 자본 통제, 외환 시장 통제를 해야 합니다.
재정 적자, 나무 두려워할 필요 없다
복지국가라는 스웨덴도 1990년대 초반에 금융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재정 작자와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나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요즘 IMF나 EU가 요구하는 것처럼 무조건 재정 지출 줄이고, 무조건 민영화하고, 무조건 공무원 해고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물론 일부 복지를 줄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증세도 하고 금융 시장 구제도 강화했으니까요.
이후 위기에서 벗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은 다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자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경제가 살아나자 정부의 세수가 늘어서 위기 후 십 년도 지나지 않아 정부 부채가 다시 원래 수준으로 낮아졌어요.
이제는 국가파산법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미국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55퍼센트 전후인데, 이게 역사상 초유의 사태도 아니더군요. 1943~1956년 사이에도 50퍼센트 이상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112퍼센트까지 올라갔다고 해요.
재정 적자가 아니라 흑자를 기록하던 클린턴 대통령 당시인 1996년에도 49퍼센트까지 올라간 적이 있고요. 결국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 비율이 높은 건 전임 부시 대통령이 워낙 감세를 많이 해서 세수가 줄어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금융 위기, 저금리 때문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가 자주 일어나게 된 건 1980년대 중후반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바로 금융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시기와 겹쳐요. 시장주의자들은 금융 자본주의처럼 사장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스템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고 맹신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그린스펀 연준 의장 같은 경우 2006년까지만 해도 ‘미국 부동산 시장에 거품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다가 2007년 들어 사태가 너무 심각해지니까 그제야 국지적으로 ‘작은 거품’들이 있다고 마지못해 인정했어요.
결국 세계 금융 위기는 시장 경제 맹신이라는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금융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요인에 저금리 정책까지 가세하면서 터진 사건이라고 봅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지금 저금리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는 건 앞의 두 가지, 즉 시장 경제 맹신과 금융 자본주의가 자기들이 늘 옹호해 오던 것이기 때문이에요.
자본주의 자체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주의와 주주 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부르며 다른 나라들에도 금융 시장과 기업지배구조를 다 그렇게 바꾸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중후반이에요.
마침 그때 한국 같은 동아시아 나라들은 외환, 금융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러자 월스트리트가 IMF와 세계은행을 앞세워 ‘우리가 구제 금융에 필요한 달러를 빌려 줄 테니 그 대가로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자본 시장도 개방하라’고 요구한 겁니다.
말하자면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 주주 자본이 한국 시장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한 거죠.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식으로 토양을 바꾸었고요.
결국 문제는 자유 시장에 대한 맹신이다
보수파든 개혁파든 정보 공개와 투명성 강화 정도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시장 경제의 효율성과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환상이 있기 때문인데, 이건 정말 오산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금융 개혁은 말하자면 금융 시장의, 금융 자본을 위한, 금융 자본에 의한 금융 개혁에 불과해요. 말하자면 금융 시장이 계속 돈을 더 잘 벌기 위해 약간의 수리를 하는 금융 개혁이지, 경제의 다른 부분을 도와주려는 금융 개혁이 아니라는 겁니다.
보수도 진보도 월스트리트를 선망한다
저격하면 될 걸 왜 무차별 폭격하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위험 때문에 전 세계가 저금리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금리를 올릴 경우 금리 차액을 노린 외국 투기 자본이 무더기로 들어올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금리를 정말로 인상하고 싶다면 자본 통제를 해야 하는 겁니다. 즉 헤지펀드 같은 해외 투기 자본이 쉽게 들락날락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쌓은 다음에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거예요.
브라질은 실질금리가 한창 높을 때는 12퍼센트까지 갔고, 2008년 이후 조금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3퍼센트도 안 되는 국제 금리보다는 여전히 높아요. 그 때문에 자본 통제하고 자본 거래세도 올리고 해서 캐리 트레이드를 노린 외국 투기 자본의 유입을 막으려는 거예요.
물론 브라질의 실질금리가 이렇게 높다 보니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다만 과거 수십 년 동안에 비해서는 상당히 양호한 수치이기 때문에 요즘 브라질이 잘나간다고 할 뿐입니다.
중앙은행 독립? EU의 경험을 새겨라
우리나라 한국은행법에는 오로지 물가 안정만 목표로 정해져 있어요. 신자유주의적 통화주의의 교리를 만들어 낸 밀턴 프리드먼이 가장 바람직하게 보는 모델인 거죠.
반면에 완전 고용을 책임지는 것은 기획재정부입니다. 미국과 달리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을 서로 다른 조직이 맡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금리 인상 같은 대포를 발사하기 전에 한국은행이 기획재정부와 공동으로 협의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게다가 금리 안상 시 발생하는 가계 파산과 기업 파산에 대비하려면 사전에 사회복지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건 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때 사전에 정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합의해야 맞지 않나요?
유럽에서는 이른바 좌파라는 사람들이 중앙은행 독립에 절대 반대하는 거예요. 통화정책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민주적 통제 밖에 둘 수 있느냐는 거죠.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 유럽의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요즘도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게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입니다. EU 어디에도 유럽중앙은행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장치를 만들어 놓지 않은 거예요. 유럽위원회에 권한이 없다면 하다못해 유럽의회에라도 그런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의회에도 그런 권한이 없거든요.
하다못해 미국 연준도 3개월인가 6개월인가에 한 번씩은 미국 의회에 가서 머리를 숙여야 해요. 의회 청문회에 가서 연준 총재가 고분고분 말하는 거 보셨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EU에는 그런 것도 없어요. 유럽중앙은행이 요즘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멋대로 금리를 올리겠다고 주장하는데, 그걸 막을 뾰족한 장치가 없는 겁니다.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거죠.
첨단 금융 기법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한국의 자칭 진보 경제학자들은 은행들의 주주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니 정말 심각한 문제네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은행 대출의 90퍼센트 가까이가 기업에 빌려준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업 대출이 30~40퍼센트 정도예요. 나머지가 다 가계 대출인데 그중 절반이 부동산 대출이잖아요. 그
리고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우리 은행들 역시 주식 펀드들 압력 아래 있어요. 은행 주식의 60퍼센트 정도를 월스트리트나 런던 시티의 펀드들이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은행들이 어떻게든 수익을 내서 주주들에게 나눠 주려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 은행권이 그렇게 가계 대출, 부동산 대출을 늘린 이유가 주주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 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은행들이 가계 대출을 늘린 이유는 단지 바젤 규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물론 일리는 있죠. 바젤 규제라는 게 대출 리스크에 따라 위험을 측정하게 되어 있는데, 부동산 담보 같은 게 있는 가계보다는 기업에 대한 대출 리스크가 더 높으니까요.
은행 민영화야말로 반중소기업적이다
은행 대출의 규제 완화라는, 사실상 반 중소기업적인 정책을 지지한 분들이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에요. 심지어 그들은 과거 중소기업은행이었던 기업은행의 민영화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기업은행이 완전 민영화되면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이 그야말로 3분의 1은 줄어들 텐데도 말입니다.
영국 은행가들 사이에 격언이 있습니다. 돈 필요한 놈한테는 절대 돈 꿔 주지 마라는 거죠. 그게 바로 첨단 금융 기법입니다.
기업을 도와주려 애쓰는 은행은 수십 년 전부터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과 결합되어 있던 곳들이라, 충분치는 않지만 기업들을 재무제표나 담보 여부만으로 심사하지 않는 조직 관행이 아직 남아 있어요. 이건 우리나라 은행들의 미래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관행이 지금 민영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파도에 휩쓸려 그대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어요.
그 때문에 기업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곳은 민영화하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은행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다행히 이 은행들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데, 관치 금융이라는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정부가 끌어안고 소중하게 잘 키워 우리나라 은행 산업의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은행 해외 매각, 그 책임은 누구에게?
사모펀드는 익명의 돈 많은 투자자들이 모여서 만든 것으로, 3년에서 5년 이렇게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모펀드에 어떻게 국가 경제의 핏줄을 관리하는 은행을 준다는 거죠?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그 3년에서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단기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할 게 뻔한데 말입니다.
이미 사모펀드에 넘어간 외환은행이나 제일은행(현 SC은행), 한미은행(현 씨티은행)에서 보았잖습니까? 당장 돈이 안 되는 기업 대출은 확 줄여 버리고, 대신에 돈이 되는 부동산과 고리 대금 같은 쪽으로만 대출을 늘리는 걸요. 사모펀드 투자자 중에 재벌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사모펀드는 은행의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은행법에 못 박아야 합니다.
재벌 금융 규제보다 파생상품 규제부터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 드러났듯이 정말 중요한 건 재벌 금융 규제가 아니라 헤지펀드나 신용파생상품, 국제 신용 평가사, 이런 것들을 규제하는 거예요. 이런 데 집중해야 하는데, 근원적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지엽 말단적인 문제를 가지고 마치 국은이 걸린 것처럼 말하면 안 되죠.
예컨대 재벌 계열사인 SK증권이 헤지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것이나 독립 증권사인 키움증권이나 대신증권이 헤지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것이나 그 위험성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헤지펀드 같은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니 그걸 규제하고 금지하는 거예요.
보수와 진보 모두 월스트리트를 선망한다
시장 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도 우리나라 은행들의 가계 대출이 크게 늘어난 걸 걱정하기는 해요. 그런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면 그저 은행 경영진이 방만하게 경영했기 때문이라고만 합니다. 막상 은행 경영진이 방만한 경영을 한 이유가 뭔지 물으면 개인적인 도덕적 결함이나 경영 능력 부족으로 치부해 버려요.
절대로 우리나라 은행들이 주주 자본주의에 포획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은행권을 주주 자본주의화한 장본인이 바로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니까요. 우리도 요즘 선진국에서 나오는 말처럼 은행 경영진의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규제해야 합니다.
스톡옵션이라는 게 해당 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경영진이 오른 가격에 자기 보유 주식을 팔아 이익을 얻는 방식이잖아요? 그래서 회사 경영진은 죽어라고 자기 회사 주가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거고요. 다른 일반 회사는 스톡옵션을 허용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은행에서는 절대 허용하면 안 됩니다.
왜 다시 박정희를 불러내는가?
한국의 경제발전이 정말 당연한 결과인가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중화학 공업의 성공이 바로 박정희식 관치 경제가 비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증거죠. 박정희는 결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총칼로 언로를 막고, 입바른 국회의원들을 정보부로 잡아들여 고문까지 하고, 유신헌법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말렸으니까요. 이런 거 다 인정해야 합니다.
박정희의 업적 중 하나인 산업 정책과 정책 금융은 버릴 게 아니라 이어받아야 해요. 진정으로 민주적인 국가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권자인 국민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대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결국 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의 견해라는 게 ‘산업 정책 같은 건 필요 없고, 사기업들이 자기 이익만 열심히 추구하도록 놔두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미국 투자은행들이 자기 이익만 열심히 추구하다가 대형 사고를 친 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아닌가요? 이런 논리는 극단적인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만약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 당사자들만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포항제철 같은 산업 정책의 성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빈부격차가 정말 박정희 때문인가?
양극화 원인을 박정희가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 건 엉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통계로 봐도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건 쉽게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 소득 불평등도가 1980년대에는 오히려 계속 줄어들었어요.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부터 확대되기 시작하고, 1997년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급등하거든요.
김영삼 정부가 경제기획원을 폐지해 산업 정책을 약화시키고, OECD 가입하고, 금융 규제 완화하면서 세계화를 부르짖을 때가 1990년대 초반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대기업의 고용 관행 변화를 잘 봐야 한다는 겁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재벌 대기업들은 비정규직을 거의 채용하지 않았어요.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에 정규직을 중심으로 강력한 노조가 자리를 잡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1997년 IMF 사태 이후에는 대기업들이 아예 정규직은 새로 뽑지 않는 수준까지 갔고요.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보고 그 원인이 뭔지 찾아야 합니다. 그냥 ‘재벌이 나빠서’라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1990년대 초반부터 진행되었어요. 그러다가 신자유주의가 본궤도에 오른 1998년부터는 걷잡을 수 없어진 거고요. 비정규직 채용도 마찬가지예요.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선악의 잣대로 잴 수 없다
역사를 선악이라는 윤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해 영미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은연 중 근대화,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발전은 ‘선한 영미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에서 전개되어야만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자본주의는 결코 선하거나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어느 나라나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정착시키지 못했고요.
세계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한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과 영국 역시 마찬가지예요. 미국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여성이나 흑인에게는 투표권도 안 주고, 사설 탐정단을 고용해 노동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한 나라였으니까요.
시장 개혁 이후 남미의 현실을 보라!
1980년대부터 일찌감치 시카고학파 경제 이론과 주주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남미의 금융 위기가 그런 유형이었어요. 남미의 기업들은 투자를 꺼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바람에 부채 비율도 대단히 낮았습니다. 한국이 300~400퍼센트일 때 브라질은 50퍼센트 정도였으니까요. 1980년대 우리나라의 시장주의적 관료들과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좋아했을 만한 체질 강한 기업들 아닌가요?
이러니 남미의 은행들이 누구에게 돈을 빌려 줬겠어요?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었죠. 나중에 이런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1982년 칠레에서, 1995년 멕시코에서, 1998년 브라질에서, 2002년 아르헨티나에서 금융 위기가 터진 겁니다.
흔히 박정희식 관치와 산업 정책을 정경 유착이라고 하면서 마치 산업 정책을 하면 반드시 부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래도 산업 정책에는 일관된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정부 보조금이나 특혜 금융은 그에 부합하는 기업에게만 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큰 부정이 일어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공개된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비효율적인 관치의 유산이라고 비판받으면서 아예 폐지되었고, 그 결과 예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부정이 은밀하게 일어나는 겁니다.
공정 시장? 결국 영미식 자본주의다
흔히 말하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산업들이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라면 최소한 연 30만~50만 대는 생산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자동차 산업이나 전자 산업 같은 걸 육성할 때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대기업의 해악을 막는 방법을 논의해야 합니다. 재벌, 즉 기업집단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주주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계열사 지원은 내부자 부당 거래가 되고 불공정 거래가 됩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관점만이 아니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도 그룹 계열사들 상호 지원은 불공정한 거예요. 이 문제로 일본도 많이 당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 회사들이 일본 회사들과 국제 경쟁에서 져서 난리가 났는데, 알고 보니 일본은 미국 회사들과 달리 서로 도와주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미구 회사들이 이를 GATT에 불공정 무역으로 제소하겠다고 난리를 쳤어요.
재벌 대신 해외 펀드 지배가 공정인가?
진정으로 공정한 경제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려면 재벌들 뒤에 있는 국제 금융 자본을 규제해야 하고, 재벌들 위에 있는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을 규제해야 합니다.
외국인 주주가 100퍼센트 지배하는 씨티은행이나 스탠다드차타드, 외환은행을 보세요. 정부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을 못하게 규제하니까 외국계 은행들은 오히려 다른 은행이 못하는 것 우리가 하자는 식으로 주택 대출을 더 늘렸잖아요. 이게 그들의 주주에게는 공정한 일이거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시장이나 자본주의는 원래 공정을 실천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지식 경제-굴뚝 경제, 구분 자체가 난센스다
미국의 군사 전략과 국방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성장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한국의 진보적 인사들이 ‘참된 기업가’ ‘착한 기업가’로 치켜세우면서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과 대비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죠.
문제의 핵심은 ‘나쁜 삼성 대 착한 애플’의 구도가 아니에요. 이는 미국과 한국의 역사적 제도적 차이를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한 반면 제조업은 약하고, 한국이나 일본, 독일, 스웨덴 같은 나라는 소프트웨어는 약하지만 제조업은 강해요.
이런 차이는 보지 않은 채 애플의 미국은 감동을 주는 지식 기반 경제인 데 비해, 삼성공화국 한국은 하드웨어 굴뚝 경제라는 사고는 편협한 거죠.
실리콘밸리야말로 미국 산업 정책의 결과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정책은 다른 나라에 ‘미국은 산업 정책 안 한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가 무장 해제를 하도록 말이죠. 그러나 실제로 미국은 산업 정책의 비중이 큽니다. 실리콘밸리 역시 정부 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고요. 미국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대부분 국방과 관련 있어요. 컴퓨터는 펜타곤, 반도체는 미 해군, 항공기 산업은 미 공군, 인터넷도 미 국방부가 지원한 것이고요.
말하자면 미국 역시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늘 비판하는 산업 정책을 하고 있는데, 단지 한국과는 다른 형태 다른 방식으로 할 뿐이라는 거군요. 사실 미국 제약 산업의 경쟁력이 뛰어난 이유도 산업 정책 덕분이죠. 미국 제약 산업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 한참 뒤졌어요. 그런데 1940년대부터 미 국방부가 전 세계에 미군을 파견하다 보니 병사들이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국방부와 보건부가 발하자면 전략적으로 온갖 신약 개발을 지원하면서 제약 산업이 발전한 겁니다.
지금도 미국 제약 산업의 연구개발비 중 30퍼센트가 정부에서 나와요. 세계 최대 규모죠. 미국에도 이런 엄청난 산업 정책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국은 안 한다더라, 우리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있는 거예요. 미국은 연방정부뿐 아니라 주정부도 엄청난 규모의 산업정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스위스도 마찬가지고요.
재벌 개혁,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재벌 해체는 투기 자본을 위한 잔칫상이다
흔히 스웨덴의 발렌베리를 대표적 차등의결권의 예로 꼽는데, 미국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빅3라고 하는 포드자동차의 주식은 총수 가족이 보유한 A주와 그렇지 않은 B주로 나눠져 있는데, 거기서 A주는 발행 주식 전체의 20퍼센트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데 M&A 등 주요한 결정에서는 아무리 B주 보유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해도 A주의 과반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만큼 포드 가문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나라에는 현재 이런 차등의결권 제도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재벌들이 순환 출자 같은 방법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해 온 거예요. 이렇게 나라마다 시대마다 경영권을 지키는 고유의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의 주주 자본주의 게임에서 그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재벌 가문은 여차하면 모든 경제 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는 만큼 어떻게 해서든 주가를 높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기도 하고, 일단 뽑은 정규직 인력은 불철주야 일하게 해서 본전을 뽑아야죠. 물론 하청 단가는 남들한테 욕먹지 않을 수준까지만 주고,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같은 것도 잘못 없다고 시치미 뚝 떼어야 하고, 노동조합 같은 건 눈에 불을 켜면서 만들게 방해해야 합니다.
이런 행위들이 단지 주식 투자자들에게만 좋은 건 아니에요. 대주주인 이건희 일가 역시 당연히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배당을 받으니 좋죠. 따라서 재벌 가문들로서도 주주 자본주의가 별로 싫을 게 없어요.
키운다는 파이는 누가 먹어 치우고 있는가?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산업이 여전히 많아요. 우주항공, 정밀기계, 제약, 부품소재 등이 너무 약하거든요. 이런 부문으로 돈 많은 대기업들이 과감히 진출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에 기여해야 합니다.
제약 산업 같은 경우 영국 수준을 쫓아가려고만 해도 앞으로 10~20년 정도는 손해를 각오하고 장기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누가 해요? 아무리 주식 시장이 발전하고 돈 있는 투자자들이 많다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수익이 안 나오고, 게다가 손해 볼 가능성까지 큰 투자를 하겠어요? 결국 대기업이 해야 하지 않나요?
주주 분배액의 1/5인 1조만 매년 오리지널 신약 개발에 쓴다 해도 삼성은 10년, 20년 뒤에는 틀림없이 세계적인 제약 업체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입만 열면 지금은 파이를 나눌 때가 아니라 파이를 키울 때라는 둥 분배를 하면 성장이 안 된다는 둥 말하면서 복지국가를 ‘놀고먹는 게으른 배짱이’라고 비판하는데, 오늘날 기업 투자와 경제 성장을 방해하면서 분배를 외치는 최대의 분배주의자들은 바로 주식 투자자들이고 금융 자본이에요.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이야말로 최대의 분배주의자들인 거죠. 그들이야말로 배짱이예요. 경제학자 케인스도 이런 자본가들을 일러 비판하잖습니까. rentier capitalism,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면 ‘띵까띵까 놀고먹는 자본가들의 자본주의’라고요.
경제 민주화의 이상향이라는 KT를 보라
한국은 R&D 부문에서 공공 투자의 비중이 채 20퍼센트도 안 되는 데 비해 미국은 40퍼센트에 이릅니다. 그런 데다 한국 같은 후발주자들은 미국 같은 선진국보다 R&D에 더 많이 투자해야 따라잡을 가능성이 생기는데, 문제는 신자유주의 시장 개혁 이후 투자 성향이 많이 위축됐다는 거예요.
1999년 민영화 이후 KT는 기업지배구조를 잘 바꿨다고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상을 받아 마땅했을까요? 민영화 과정에서 원래 정규직의 절반 가까이가 해고되고, 그중 일부는 다시 비정규직으로, 외주 노동자나 파견 노동자로 재고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주 배당은 엄청나게 높였어요. 순이익 대비 주주 이익 환원율이 2010년에는 50퍼센트 정도였는데, 2009년에는 94퍼센트더군요. 이런 기업에 진보적 시민 단체가 상을 주면서 노동자들의 눈물은 외면했어요. 정말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누구에게 좋은 걸까요?
기업의 투자마저 양극화되고 있다
주목할 사실은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재벌 해체를 당한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투자율이 IMF 사태 이전보다 현저히 낮아졌거나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정체되고 있다는 거예요.
KT나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가 대표적이죠. 반면에 나름대로 그룹 체제가 유지된 재벌 산하에 남아 있는 대기업 중에서 잘나가는 일부 기업들은 매출액 대비 투자율이 계속해서 크게 늘어나고 있어요. 그 대표적인 회사들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입니다.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고요.
기관 투자자는 과연 선량한가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적대적 M&A는 최근의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에요. 선진국에서도 지난 200년간 적대적 M&A가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 적대적 M&A가 가능하려면 먼저 해당 회사가 상장 기업이어야 하고, 또 소액주주와 기업 사냥 펀드들이 기업 이사회를 장악하는 게 용이하게끔 모든 법적 규제가 풀려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선결 조건이 과거에는 선진국에서도 없었던 거예요.
적대적 M&A는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1980년대부터 금융 시장 키우고, 금융 규제 완화하고, 주주 자본주의를 전면화하면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현상입니다.
재벌 경영권과 복지를 맞바꾸자
시민들이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 장치를 허용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대가로 제안할 수 있는 건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 제한, 설비 및 R&D 투자 확대, 미래형 신산업 투자,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 및 부자 증세 협조 등이 있을 수 있죠. 아무튼 반드시 그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은 재벌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국내 대기업들을 지금보다 더 국제 자본 시장의 압력에 노출시켜야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해 온 셈입니다. 하지만 이건 한국 경제가 국제 금융 자본의 논리에 전면적으로 노출될 때 발생하는 해악을 간과하는 태도예요.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재벌이 바라는 건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했죠. 그러나 이건 재벌이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사업 장기 투자 같은 어려운 일에서는 손을 놓고 지금처럼 비교적 빨리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금융이나 심지어 소매 유통 같은 서비스업으로 진출해 서민들의 밥그릇까지 위협하는 현실을 간과한 논리입니다.
투자자 이익보다 미래 산업 육성이 먼저다
기술혁신으로 기존 산업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신산업을 키우는 건 좋은 다각화지만, 로비로 규제 완화를 해서 의료 시장에나 들어가는 건 나쁜 다각화니까 그런 건 막아야 합니다. SSM처럼 국내 소상인들과 경쟁을 해서 쉽게 벌어 보겠다는 다각화도 저지해야 하고요.
복지가 중소기업을 업그레이드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복지국가가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는 2차, 3차 하청 기업들처럼 저임금 노동자를 채용해야 경쟁력이 유지되는 한계 기업들을 정책적으로 퇴출시키는 겁니다.
동시에 최저임금을 높이고, 이들 회사의 종업원까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산별 노조를 국가적으로 만들어 저임금 일자리가 원칙적으로 존재할 수 없도록 해야 하고요. 그렇게 되면 저임금-저효율 중소기업들과 영세 업체들은 퇴출될 겁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좀 더 수익성 높은 산업으로 이직할 수 있는 직업 재훈련을 시키고, 또 산업 정책을 통해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신산업 부문을 육성해야 합니다. 생산적 복지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복지국가를 중심축으로 해서 중소기업 부문의 업그레이드 전략을 전체적으로 짜자는 말씀이죠? 그게 올바른 방향입니다. 산업 구조 자체가 고도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대기업의 중소기업 약탈을 정부가 규제한다 해도 상황이 본질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아요.
2차, 3차 하청 부문의 한계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근근이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술력을 높이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힘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스웨덴은 연대임금제를 통해 한계기업들을 정리하면서 국가 전체의 산업 고도화를 이루어 내 바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같은 임금을 준다는 것이 연대 임금 원칙인데, 이 제도를 시행하면 생산성이 낮은 한계 기업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어요.
반면에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은 더 성장하게 됩니다.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내부의 임금 격차가 좁혀져 양극화도 줄어들고요.
우리가 이런 의견을 제시하면 보수파들은 ‘고임금과 노조 때문에 기업 망한다’고 할 겁니다. 그런데 폭스바겐이나 벤츠 노동자들은 GM 노동자들보다 월급을 훨씬 더 많이 받지만 실제로 망한 건 GM입니다. 물론 보수파들은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기술 혁신 못하고 품질 높이지 못해서 GM이 망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임금과 노조 때문에 망했다고만 하는 거죠.
노조 때문에 망했다면 노조 강한 스웨덴이나 임금 높은 독일 자동차 회사가 망해야지 왜 미국 자동차 회사가 망합니까? 결국 스웨덴이나 독일은 1시간에 40달러씩 주는데도 수지타산이 맞다는 거고, GM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 아닙니까? GM이 그렇게 된 이유가 뭐겠어요? 기술 개발 안하고, 기술이 필요하면 사브니 대우차니 해서 좀 작고 돈 없는 기업 인수해서 기술 빼내 쓰고 하다가 망한 겁니다.
지금 영국에서 쉐보레 달고 다니는 차들도 다 옛날에 대우가 디자인한 자동차들이에요.
독일에는 중소기업 금융을 전담하는 공립 은행인 스파르카센이 지역마다 있는데, 그 은행의 대주주는 지방 정부입니다. 우리도 이런 게 필요해요. 스파르카센은 지방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정책과 연결되어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경기가 안 좋아지면 일반 은행들은 대출 회수를 독촉한다. 그러나 스파르카센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런 점 때문에도 기업은행 같은 국책 은행을 민영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기업은행은 앞으로 복지국가를 위해서도 할 일이 많아요.
가장 좋은 FTA 대책이 바로 복지국가다
왜 스위스를 ‘알프스의 요새’라고 하는가
스위스는 냉철하게 따져 보고 국익에 어긋나는 경제 통합에는 참가하지 않아요. EU는 농업을 엄청 보호하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스위스는 그 수준이 부족하다며 EU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농업에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의 뿌리는 산촌의 농민이다, 이들이 사라져 스위스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면 개방하지 않겠다, 개방하지 않아 생기는 불이익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거죠.
스위스는 기업지배구조도 대단합니다. 소액주주들이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러면서도 소액 주주들로부터 원성이 나오지 않도록 치밀하게 그 규칙들을 짜 놓았다고 해요. 또 스위스의 대기업과 은행은 겉으로는 다 독립들을 짜 놓았다고 해요. 또 스위스의 대기업과 은행은 겉으로는 다 독립된 회사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끼리 거미줄처럼 복잡한 순환 출자 관계로 엮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인근 강대국의 자본이 어떻게 인수할 방법이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거죠. 지금도 그렇다고 하고요. 이런 면에서도 스위스를 알프스의 요새라고 부른다는군요.
제조업 없이는 고부가가치 서비스도 없다
현대자동차 사람들이 1980년대까지는 엔진 기술을 배우려고 영국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이 자동차 강국이었고, 엔진 디자인 능력도 대단히 뛰어났으니까요. 그런데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면서 현대자동차 사람들이 영국에 잘 안 가게 된대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요. 반면에 요즘에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스위스에 자주 간답니다.
이 나라들에는 자동차와 정밀기계 산업이 발전해서 지금도 기술 개발과 디자인 개발 관련 컨설팅 업체들에서 배울 게 많다면서요.
‘세계의 사무실’ 인도의 열악한 경제 현실
지금 선진국 중에서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가장 적은 나라가 호주입니다. 제조업 생산량이 다른 나라보다도 30퍼센트 이상 낮으니까요. 그렇지만 천연자원이 워낙 풍부해서 그럭저럭 경제를 꾸려 가는 겁니다.
현재 인도의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은 호주의 1/30밖에 안돼요. 인도가 호주 수준까지 제조업이 발전하려고 해도 1인당 생산량이 지금보다 30배는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죠. 지금 인도의 경제 실적으로는 제조업을 발전시킬 여력도 없어요. 그런데 서비스 부문에서 가까스로 낸 흑자로는 그 기계조차 제대로 구매할 수 없어요. 성공했다고 하는 서비스업이 이 나라 제조업 무역 적자의 20퍼센트 정도밖에 감당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한국의 제조업이 과연 세계적 수준인가?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게 ‘한국 제조업은 이미 세계 수준’이라는 과신입니다. FTA 찬성론자들은 이미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이 선진국의 70~110퍼센트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통계를 제시하곤 하는데,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의 제조업 생산성과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우리는 아직 미국의 50퍼센트 수준이에요.
첨단 산업 육성, ‘할 수 있다’면 그만 인가
우리나라 최대 제약사가 동아제약인데, 이 회사 매출이 연간 1조 원밖에 안돼요. 미국 화이자의 1/20에도 미치지 못하죠. 게다가 동아제약의 R&D 투자는 매출액의 5퍼센트 미만입니다. 화이자는 매출액의 15퍼센트를 신약 개발에 쓰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화이자를 따라간다는 거죠?
한미 FTA가 곧 발효되면서, 그동안 싼 복제약만 생산해 온 많은 중소 제약사들이 도산하고 그나마 오리지널 신약을 약간 개량한 개량 신약 개발 능력을 가진 동아제약이나 한미약품 같은 대기업들 위주로 제약 업계가 재편될 겁니다.
우리나라 제약 회사들의 오리지널 신약 개발 능력이 미국 제약사들의 수준으로 높아지려면 앞으로 10년, 20년 이상 엄청난 규모의 신약 R&D 투자가 필요해요. 한 회사당 매년 신약 개발에 수천억 원씩은 투자할 수 있어야 선진국 제약 회사들의 꽁무니를 겨우 따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한미 FTA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마저 없애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벌들이 FTA를 환영하는 이유는···
예컨대 미국이나 캐나다의 한 회사가 멕시코 정부에 ‘너희 나라 환경 규제 때문에 우리가 돈을 벌 만큼 못 벌었다’고 주장하면 일단 재판을 걸어 국제중재위원회로 갈 수 있어요. 손해를 봤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만큼 못 벌었다는 걸 가지고 정부를 제소하는 것이니 사실 기가 찰 조항이죠.
그런 점에서 지금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어처구니없는 거예요. 이런 제도 하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제소하겠다고 위협만 해도 그 정부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어요. 심지어 외국인 투자 유치를 갈망하는 정부가 투자자 제소가 두려워서 애초부터 규제를 소극적으로 할 수도 있고요.
재벌들이 보험이나 의료 분야에서 한국 시장을 더 먹고 싶은데, 미국 기업과 합작하면 자기네들의 능력이 단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추측도 있습니다. 예컨대 앞으로 영리 병원이 일단 허용되면 한미 FTA의 ‘역진 방지’ 규정 때문에 이를 철회할 수가 없어요. 철회하면 미국계 보험 회사들이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대해 투자자-국가 소송을 걸어 버릴 테니까요.
그 경우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삼성생명 같은 재벌 보험사들은 더 많은 보험 상품을 팔 수 있게 됩니다. 삼성생명으로서는 차마 말은 못하나 내심 바라던 일이 일어나는 거죠.
FTA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게 오히려 괴담이다
한미 FTA가 ‘투자자가 예상했던 기대 수익의 흐름을 심각하게 교란한 모든 정부 조치’를 ‘간접 수용’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투자자-국가 소송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FTA가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형 재벌 개혁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
앞으로 정부가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의 요구를 수용해 출자총액제한제를 대폭 강화하고 순환 출자 금지를 시행한다고 하죠. 그렇게 되면 산당수의 재벌계 대기업들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될 테고, 그에 따라 국내외 사모펀드들의 먹을거리가 많아질 겁니다. 물론 주식 시장 역시 환호할 거고요.
그런데 몇 년 뒤 그런 잘못된 재벌 개혁으로 인해 심각해진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우려한 정부가 마음을 바꿔 출자총액제한제를 다시 폐지했다고 칩시다. 출자총액제한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미 국내에서 투자 활동을 시작했던 미국과 유럽계 사모펀드들은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 역시 ‘간접 수용’에 해당되어 투자자 국가 소송감이 된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FTA 대책이 바로 복지국가
한미 FTA가 발효되었다고 해서 한국 정부에 반드시 영리 병원을 허용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영리 병원 제도를 절대로 도입하지 않으면 돼요. 적어도 이런 결정권은 FTA 발효 이후에도 우리의 주권이고, 미국으로서는 강요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달렸어요.
비록 FTA 체제하에 있다 해도 증세를 통해 복지국가를 할 수 있고, 건강보험도 확대할 수 있고, 노인보험과 공교육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재벌 개혁도 할 수 있고, 진정한 경제 민주화도 할 수 있어요.
복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공동 구매다!
복지는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 시스템’
미국이나 영국에서 발전한 복지 제도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과 소비를 보완해 주는 데 집중해요. 국가 재정으로 소득을 재분배해 소비를 늘리고 경기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에 입각한 정책이죠. 이런 나라들도 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의 실업수당은 줍니다. 그렇지만 산업 고도화를 위한 작업 재교육 같은 건 별로 없어요.
반면에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실업수당을 넉넉하게 주는 건 물론 정부가 돈을 대서 이직이나 전직을 위한 재교육도 시켜줌으로써 산업 고도화와 경제 성장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복지국가가 실직자와 그 가족만 돕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기업과 자본도 돕는 셈이죠. 미국과 영국처럼 복지국가가 소득과 소비의 재분배에만 집중한다면 경제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다친 사람 치료 이전에 아예 다치지 않게 하라
복지정책과 금융 시장 규제, 산업 정책이 서로 결합되지 않으면 영국처럼 돼요. 영국은 금융 규제 완화로 금융 산업의 수익을 키워 주고, 거기서 세금을 거두어 복지 정책을 수행하자는 것 외에는 특별한 산업 정책이 없었어요.
교육 투자를 많이 했다고 하지만 생산성 높은 인적 자본이 크게 육성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니 금융 위기 이후로는 나라 전체가 방향을 상실해 버릴 수밖에요. 제3의 길이 헛수고가 되어 버린 거죠.
진짜 경제 민주화는 ‘1원1표’가 아니다
스웨덴의 연대임금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산별 노조와 중아 교섭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산별 노조와 중앙 교섭이 없었다면 대기업-하청 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관철시킬 수가 없고, 따라서 1차 분배의 개선도, 산업 고도화도 그만큼 어렵습니다.
세금 증액 없는 복지? 불가능한 구호다
감세론자들에 따르면 세율이 낮아지면 개인이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으니까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저축도 더 열심히 해서 결국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탈세도 덜하게 되고요. 기업들도 세율이 낮아야 투자를 더 해서 일자리를 더 늘리고,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도 촉진된다는 거죠. 그러나 논리와 현실은 차이가 많았어요.
월급을 많이 받으면 개인소득세 최고 세율인 35퍼센트가 적용될 수밖에 없는거죠. 반면에 금융 투자자인 버핏의 소득은 대부분 주식 배당이나 증권 매매 차익에서 나온 금융 수익인데, 그런 투자 소득에는 14퍼센트라는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겁니다.
레이건 시절부터 그렇게 낮아졌다고 해요. 땀 흘려 번 근로 소득보다 쉽게 번 금융 투자 소득을 더 우대해 준 거예요.
그러면 부자 감세의 결과 정말 경제 성장이 더 잘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더 늘어나요? 실제로는 이런 부자 특혜가 없었던 1950~1960년대에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훨씬 높았어요.
2007년 OECD 평균으로 보면 GDP 중에서 정부의 복지 예산 비중이 19.3퍼센트입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30퍼센트가 넘고, 건강보험이 허술한 ‘식코’의 나라 미국은 13~14퍼센트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 현재 GDP대비 9퍼센트로 OECD에서 멕시코에 이어 끝에서 두세 번째입니다.
노동도 부동산도 결국 복지문제다
미국식 복지로 복지를 논하지 마라
정말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한 극빈층에만 국가적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잔여주의 복지 체제에서는 혜택에서 제외된 대다수 국민은 저임금에 사내 복지 혜택도 없는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살아가야 해요. 반면에 선별된 아주 일부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훌륭한 사내 복지 혜택까지 받고요. 그게 바로 미국식 복지 시스템이에요.
대기업 정규직이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단지 일자리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에요. 많은 사내 복지 혜택을 다 잃어버리는 거죠. 그러니 목숨 걸고 싸우는 게 주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합리적 선택’일 수밖에 없어요. 또 요즘 대학생들이 죽기 살기로 스펙 쌓기를 해서 대기업과 공공 부문, 은행에 취업하려는 것도 시장 논리, 즉 자유 시장 논리가 잘 작동하는 환경 속에서 취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인 셈입니다.
신고전파 포퓰리즘은 하향 평준화노선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신봉하는 시장 이론에 따르면 노동 시장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독점체가 없어지면 완전 경쟁이 보장되어 시장이 공정해진다고 하죠. 그런데 공정한 완전 경쟁 노동 시장에서는 정규직의 임금과 복지 혜택 역시 비정규직 수준으로 하향 평균화됩니다. 그게 바로 신고전파 경제학 논리예요.
완전한 시장 경쟁이 되면 최고의 효율성이 나타난다고 보는 거죠. 그 경제학에서는 기술과 숙련은 외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봐요. 즉 기술 혁신은 시장 외부에서 일종의 외적 충격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시장에서 내재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거죠. 결국 시장 경쟁을 강화해서 하향 평균화하자는 게 신고전파 경제학인 셈입니다.
유연 안정성을 말하기 전에 안전망부터!
스웨덴이나 덴마크가 유연 안정성 테제를 내걸고 유연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의 일이에요. 즉 1930년대부터 시작하여 거의 50년에서 60년에 걸쳐 대단히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놓아 삶의 안정성이 최고도로 높아진 것을 전제로 해서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등 약간의 고용 유연성을 이야기한 거죠.
복지국가가 성숙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고용 유연성 이야기가 나와도 그 사회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을 수 있었던 거예요.
재벌 개혁보다는 최저임금 규제를!
원하청 가격에 대한 공정 거래 규제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든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데 주력하는 거죠. 물론 이를 위해서는 노동권 신장과 그 일환인 중소기업 노동조합 설립, 단체협상 활성화, 이를 통한 근로기준법 준수 등에 정부의 규제 노력이 집중되어야 하겠죠. 그리고 이 경우 노조는 당연히 산별 노조여야 하고요. 그렇게 되면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비롯한 모든 중소기업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은 엄격히 금지되고, 산별 노조의 활동 결과 직원들 급여 수준도 올라갈 겁니다.
물론 이 경우 중소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겠죠. 하지만 그 부담을 감당 못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생산성 낮은 회사들은 도산하여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성이 높은 회사로 인수·합병되면서 규모가 커질 거고, 그렇게 규모가 커진 회사는 재벌계 원청회사와 협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토건과 경제 체제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경우 2007년 태풍 카타리나가 뉴올리언스 덮치고 미시시피 강이 범람했을 때 가장 큰 문제로 지적이 된 게 바로 공공 인프라의 문제였잖아요. 미국에 부시 공화당이 집권하고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외치며 연방정부의 토건 예산을 줄이는 통에 댐과 다리 같은 공공 인프라를 수리도 못하고 수십 년간 방치한 탓에 그런 참사가 빚어졌으니까요.
부동산 거품도 주주 자본주의가 키웠다
전 세계적으로 1990년대부터 부동산 버블이 만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화 때문이에요. 금융 규제 완화로 MBS(주택저당증권)니 CDO(부채담보부증권)니 하는 신용파생상품들이 출현하면서 엄청난 양의 돈이 부동산 쪽으로 유입되니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주주 자본주의가 만연하면서 기업들도 생산적 투자보다는 재테크, 말하자면 유휴 자금 운용을 통해 쉽게 돈을 벌려고 하니 그 돈까지 다시 금융 시장에 유입됩니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 금융 시장에서 투기적 이익을 겨냥한 유동 자금이 점점 더 커졌어요.
그런 속에서 시장 자유주의에 따라 산업 육성 정책은 약해지고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줄어드니 실물 투자 자금 수요는 자꾸 줄어들고, 그러니 금융 시장에 유입된 유동 자금이 어디로 가겠어요? 1990년대에는 남미와 동아시아에 몰려들었다가 외환 금융 위기를 일으키고, 1990년대 말에는 IT 거품을 일으키고, 다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주택과 부동산으로 몰려들어 미국과 영국에서 부동산 거품을 일으킨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