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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킨의 마지막 설법
  • 이선정
  • 8,100원 (10%450)
  • 2020-11-11
  • : 67

시집 <치킨의 마지막 설법>을 읽고 나서......

나비 채를 들고 이 골짜기 저 산야를 돌며 팔랑거리는 나비의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볼 때도 있었다. 때론 그 슬픈 몸짓에 억누를 수없는 슬픔에 빠져 눈물 흘린 적 또한 어디 한 두 번이랴. 나의 영혼은 나비가 가는 방향에 따라, 그의 몸짓 하나에, 그가 말하는 언어에 함께 춤추었다.

 

어느 날, 나는 치킨 두 마리를 배송 받았다.

한 마리는 싸인된 치킨으로 온전히 나의 몫이다. 다른 한 마리는 포장을 뜯기가 바쁘게 따끈따끈한 열기를 간직한 채 회사에 비치된 책들 틈에 놓여지려는 찰라, 여직원 가방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몫은 다한 셈이다.

 

시인은 나보고 칼을 잘 벼리라고 한다. 시인 잡는 백정을 시킬 심산인가 보다.

오래 썼던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오랫동안 가방 속에서 숙성되기만을 기다리던 치킨을 꺼내 들고 어느 부위부터 칼질을 할까 망설인다.

혹자는 치킨에 맥주가 궁합이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치킨을 먹기도 전에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불싸, 맹탕이다. 치킨부터 먼저 먹을 걸, 왜 해설서부터 읽었나 모르겠다.

 

시인은 부위별로 조금씩 먹으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어설픈 해부학 솜씨는 내게 맞지 않는다. 나이프와 포크를 버리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먹고 싶은 날개 죽지부터 뜯어 먹기 시작한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해학과 위트, 역설이 숨 쉬고 반전이 압권이다.

다음 부위는 가슴살이다. 몸에는 좋다지만 퍽퍽한 그 맛이 어디 가랴. 한입 베어 물고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싸한 감정은 뭐지? 치킨을 먹다 눈물을 쏟아 낸다. 가슴이 먹먹하다.

치킨인줄 알고 먹었던 그 맛이 아니다. 나는 카멜레온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치킨의 마지막 설법>을 마주한 나의 어설픈 감상평이다. 얼마 전, 첫 번째 시집 <나비>를 읽고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느꼈던 기억들이 두 번째 시집에 와서야 시인의 참 모습을 대면하는 것 같다.

그의 시는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형태들이 시인의 언어를 통해 해학과 역설 그리고 반전이라는 묘미를 느끼게 만들어 준다. 그의 시는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예리한 비수가 되어 곧장 심장으로 날아든다. 판판이 박힌 비수들은 나의 영혼을 지배하고 그의 詩界에서 옴짝달싹을 못하게 마비 시켰다.

해무의 시는 그랬다.

 

아래에는 문정영 시인의 해설이다.

‘...시에도 인성이 있다. 시인의 인성을 닮는다. 하나의 톱니바퀴 같은 문장, 체험과 통증에서 얻어낸 문장은 시인이 경험하고 사유한 말들이 글로 쓰인 것들이다. 그것은 처음 읽는 아들에게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전율의 육체로 온다. 시인의 상상력이 문장의 옷을 걸치고 자신감을 획득한 것이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이선정 시인의 시적 언어들은 이미 이별을 했거나 앞으로 이별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시인이 지금껏 살아온 세계와의 충돌로 쏟아낸 사리 같은 아픔이다. 어쩌면 그런 게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운명보다 기질을 믿는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비틀거나 모호하게 숨기지 않고 정면승부로 풀어낸 승부사의 기질을 시인은 타고 난 것이다.

 

세상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인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이것이 시인의 본성이며, 세상과 나를 위한 위안이며 시를 쓰는 이유일 것이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아프면서도 따뜻한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즐겁게 세상을 겪고 자신을 탈피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시인의 말>

 

너를 쓰던 시간은 거침없었다

바다로 가는 길 여럿이어도

내 속에 갈라진 수많은 물줄기

결국 그곳으로 세차게 흘러 당도하였듯

너를 향해 흐르던 시간은

끝까지, 하염없이, 명백한 너였다

이제 그 길은 아득하고 꽃향기 멀다

나는 가끔 멈추고 오래 너를 더듬는다

네게로 난 서덜길 그리 보드랍지 않아도

너로 인해, 내가 늘 생의 충동이기를 바란다

 

-시 전문

 

생의 충동은 가끔 즐겁고 자주 아프다

기록을 모으는 헛짓을 두 번째 한다

 

 

<호떡집 앞에서>

 

어쩌다 우리의 추억엔 그 흔한 호떡 하나 들어앉을 시간이 없었다

 

하얀 입김이 서로의 온기를 끌어당기는 밤 길거리 빠알간 포장마차 앞에서 호떡 하나의 우울과 마주한다. 펄펄 끓는 설탕에 입을 데이듯 불필요한 온도에 마음을 데이고 이스트라는 집착을 들이부어 퉁퉁 부풀기만 했던 그때의 무지. 능숙하게 반죽을 만지는 중년의 여주인은 호떡만큼 사랑도 잘 빚을까? 뒤집어 달라 뜨겁다 몸부림치는 호떡이, 얼음을 뚝뚝 떨구며 섰는 허기에 찬 연인들의 냉랭한 눈빛만큼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겨울바람이 휑한 자리

뜨거운 불판 위로 희미한 얼굴 하나가 납작납작 우울한 시간을 뒤집고 있다.

 

 

<치킨의 마지막 설법>

 

닭같이 홰를 치고 싶은 날

화가 치밀어 된바람만 풀풀 일으키는 날

열난 가슴 달래려 치킨을 시킨다

 

내 속의 중심이 반쯤 기울어

무단시 어깨가 쳐질 때

닭 뼈다귀라도 채워 자신감을 곧추세울까

물렁뼈까지 오독오독 남김없이 씹어 삼킨다

 

속으로 꾹꾹 눌러 가슴팍에

날아다니던 서슬 퍼런 언어들

양쪽에 날개 달고 기름진 모가지로

꼬끼오 꼬끼오 홰를 치는 밤

 

빌린 몸으로 도를 닦으니

새벽녘,

알 하나가 툭 떨어진다



<사천 38길, 붕어빵 진료실>

 

아무개 씨

크게 호명된 붕어빵 한 쌍

일제히 특 속에서 튀어나간다

 

모자(母子) 붕어빵

부녀(父女) 붕어빵

모녀(母女) 붕어빵

 

옆구리 터진 곳은 없는지,

팥은 싱싱한지, 기름칠은 잘 됐는지

붕어빵 진찰사 화려한 이력으로

붕어 등짝에 청진기를 갖다 댄다

 

대기 중인 붕어들은

물을 보충하거나 전화기 너머 붕어들과

연신 모스부호로 수다 중

 

다시 퉁퉁한 부자(父子) 붕어빵이

호명되어 튀어 나갈 때

똑 닮은 뒤태를 훔쳐보며 웃던

내 옆의 붕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손을 꼬옥 잡는 엄마 붕어빵

-너는 아주 이다음에 어쩌니?

 

젠장, 하필 내 빵틀에 새끼 붕어가 없다

왈칵 바닷물이 차오른다

 

 

<옥계 톨게이트>

 

나는 방금

그녀들의 밥줄을 지나왔다

 

마지막 인사라며

이팝꽃처럼 하얗게 웃고 있는 매표원

흔들리는 아쉬움이

화르륵 도로 위를 덮는다

 

한 덩이씩 툭툭 떨어져 나간 이별 후

계절이 지듯 고요해진 그곳에

눈물 젖은 밥풀을 밟으며

꼬리를 물게 될 피서 차량들

 

끊어진 밥줄은

자동수납기가 체온을 잃은 채

무표정한 뼈대만 연신 덜거덕거릴 테지

 

-사람이 그리워요

사람을 주세요

따뜻한 사람이 필요하다구요

 

오가는 중얼거림이 눈처럼 수북한

6월의 겨울을 통과한다

 

 

<낙화>

 

1202호

그녀가 날았다

꽃처럼

아니, 잎처럼

 

이미 파열된 생

더 금 갈 것 없는 허공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훌쩍 타 넘었다지

 

봄꽃보다 먼저 피고 싶었던 게야

화단에 조각조각 붉게 핀 그녀

 

곁에,

더 붉게 울고 잇는 어린 사내아이

 

풀썩,

평생 꽃에 찔러 꺾인 네 목

 

어쩌니?

 

 

<주홍치마>

 

엄마의 낡은 옷장에서 치마 한 장을 받아든다

 

50년 전 꽃피웠을 장년의 유서

허물어진 골반이 아프게 접혀있다

 

곡진한 세월을 볼에 부비다

쪼글쪼글 잡힌 주름을 가만히 펴다

오지 않은 밤을 칙칙 뿌리다

두려운 아침을 꾹꾹 다리다

그제야 넌지시 꿰어본다

 

아직 조금 헐렁한 슬픔

 

주홍빛 유서를 곱게 벗어

캄캄한 어느 날 꺼내어 통곡할

옷장 한편에 미리 걸어둔다

 

-더도 말고, 거기서 봄꽃을 열 번만 피워주소

 

막막한 저녁이 우거지고

포슬포슬 눈물꽃 보풀이 인다

 

 

<인생길>

 

무작정 달리던 길 위에 어둠이 내린다

 

속도를 내는 것들의 뒤꼭지에

빨간 눈물이 매달렸다

 

앞서간 이들은 휴게소에 있는 걸까?

 

-어이 거기,

내 그리운 이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좀 알려주시게

 

인개인지 구름인지

온통 흐릿하기만 한 길이라

 

 

<재래시장>

 

그곳엔 눈이 셋 달린 고등어가 살지

 

입이 둘 달린 상추

코가 둘 달린 호박

 

작은 눈, 코, 입 하나씩 모아

나긋나긋 말을 걸어와

내 유년의 아이

 

뽀얗게

사라진 것들이

툭툭 먼지를 털며 걸어 다니지

 

빼꼼 거리던 골목을 한 겹 들면

와르르 쏟아져 안길 듯한

 

어린 호박 같은 아버지,

푸른 고등어 같은 할머니,

주렁주렁 완두콩 같은 고향집

 

똑똑 떼어내도 다시 웃자라는

축축한 상추 같은 그리움

 

 

<부정맥>

 

심장이 고장 났다

 

멋대로 펄떡거려도 좋을

스무 살짜리 심장도 아니건만

오십이나 먹고 제멋대로 뛴다

 

세월 간다고 철이 들겠나

심장 하나 내 맘대로 안 되니

몸뚱인들 내 것이라 하겠는가

 

쪼그라들어 들숨 날숨

제멋대로 뛰던 심장이 말한다

 

그러니,

미친 듯 사랑하라고!

 

 

<남루에 대하여>

 

결국 시가 되지 못해 버려진 문장처럼 딱히 정해둔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고 구석에 쭈구려 앉은 관계, 측은하게 바라보며 전신주를 핥는 빗방울이 남루하다. 결기를 다지고 세차게 밀려오던 파도마저 돌아갈 시간을 잊은 채 모래톱에 꼬리를 파묻는 미련. 끝눈이 오고 막차를 기다리던 헐벗은 시간의 남루. 대합실 둥근 철제난로의 가늘게 태우던 마지막 불꽃, 거기 기댄 주름진 손가락들의 남루. 너를 보내고 구차하게 봄을 기다리던 눈이 짓무른 시간의 남루. 헤져서 더 이상 헤어져서 도저히 꿰매고 기울 수 없는 서로를 빨랫줄에 걸어놓고 간격을 재단하듯 쓸모없이 흩날리는 남루에 대하여

 

말하려다

입을 지우고

 

눈이 남았다고,

아지랑이 같은 눈이 아직 남았다고......

 

 

<비요일의 마스카라>

 

ㅠㅠ

그녀의 눈꺼풀에

월요일의 피로가 쏟아진다

 

볼터치를 하지 않아도

발그레 생기 돌던 금요일의 얼굴은

붉은 주말에 벗고

하르르 시든 꽃처럼 졌다

 

핏기 없는 아침

또각 대던 하이힐이

운동화 뒤축처럼 질질 끌릴 때

투둑, 정수리를 내리치는 죽비

순간, 지친 세포 하나씩 일제히 숲을 향한다

 

좌르륵 그녀를 일으켜 깨워

초록숲에 또렷한 붉은 장미로 서게 한 빗방울의 타전

혹시, 그가 보낸 신호일까?

 

다시 마스카라 위의 피로를 털고

허리를 곳곳이 펴고

밝게 꿈틀거리며

 

그녀, 비요일을 걷는다

 

 

<자화상.

 

뭍으로 끌려 나와

제 성질에 못 이겨 펄펄뛰다

생을 달리한 오징어

 

반짝거렸겠지 지금은 희미해진 눈,

언제였던가 바다를 품어 탱탱했던 몸,

 

쫀쫀한 흡반이 풀리고

축 늘어진 삶에 칼자국 천지다

 

지금쯤 바다에는

남기고 온 꿈이 떠 있으려나?

죽은 다리 하나가

저쪽 동해바다를 가리킨다

 

 

<환승전용>

 

고속도로 휴게소 바닥에

갖고 싶은 글자 하나

가지런히 누워있네

 

환생이 안 되니

환승이라도 하라 하네

 

나,

갈아탈 인생 온다면

넉넉한 얼굴로 환승하리

 

모난 표정 다 깎고

치장한 화장 다 지우고

동그란 민낯으로 고조곤히 환승하리

 

기다리는 마음부터

화르륵 꽃불이 인다

 

 

<복수는 너의 힘>

 

잡혀온 것들로 아침을 끓인다

 

서해안 꽃게, 고흥 낙지,

묵호산 문어, 강화도 모시조개

 

움츠렸던 몸을 구부리거나 비틀거나

활짝 벌리면서 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마지막 탄성

그들의 절규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집게발로 탁탁 구조요청을 보내던

꽃게는 이제 움직임조차 없다

느린 죽음을 택하느니 혀를 깨물었다

 

뚜껑을 밀치고 탈출을 감행하던

문어다리 하나가 냄비의 팔 한쪽을 잡고

서서히 잠들 무렵, 잠잠하던 모시조개가

발가락까지 쥐어짜낸 폐즙(貝汁)과 함께

필사적으로 앙다물었던 고향 한 줌을 퉤 뱉고 간다

 

최후의 발설,

끝까지 근질거리던 직언을 숨기듯

품고 있던 진실은 얼마나 독한가

복수는 이런 것

 

들끓는 한 줌의 연민을 끈다

 

고요한 만찬의 식탁에

서걱서걱 모래 같은 고향이 씹힌다

 

 

<어달리>

 

금빛 머리칼이 벗겨졌다

이제, 저곳은 대머리

 

30년 전 풍성하던 머리칼이 좋아

그 집 대문 앞을 얼마나 서성였나

 

흑채를 뿌려도 민둥산인 저곳에

비키니도 사라지고 삐뜰빼뚤 분주하던

갈매기 발자국도 사라지고

달빛과 키스하던 조가비도 사라지고

광어 우럭 씨가 말라 조사들도 씨가 말라

마당 찾아 커피숍 안쪽으로 자꾸만 기어드는

바람의 구애만 서럽다

 

머리칼을 뜯어 놓았더니 합방이나 가능할까

 

해 질 무렵 노을에 질린 이마로

으헝 으헝 울어 제치는

집 나와 방황하는 젊은 파도 한 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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