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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nGruv님의 서재
  • 우리 괴물을 말해요
  • 이유리.정예은
  • 14,400원 (10%800)
  • 2018-08-13
  • : 261
소설가 폴 오스터는 “이야기에 대한 아이들의 소망은 음식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서사는 욕구된다. 인간은 주변의 세계를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본질적인 틀로써 서사를 이용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를 벗어난 가상의 이야기들을 서사로 만들어왔다. 이를 테면, 우리는 괴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괴물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괴물을 두려워하면서도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괴물은 서사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유혹자인 셈이다.
관습, 윤리, 도덕과 같은 가치와 규율이 도전 받는 이야기 혹은 그러한 가치 규범에 내포된 모순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억압되기 마련이다. 한편으로 인간은 불가해한 것들이나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 한다. 금기와 억압,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비틀려 만들어진 형상으로서 괴물은 서사 속에 등장한다. 괴물은 실재하지 않지만, 괴물에 대해서, 괴물 같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픈 욕구만큼은 실재한다. 사람들의 풍문에서부터 고전, 오늘날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서사의 원천으로 괴물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과연 더 이야기될 것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여전히 괴물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괴물에 대해 말해보자고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의도는 간명하다. ‘괴물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 괴물을 말해요>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들은 여러 대중문화 텍스트들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독자와 함께 읽어가는 듯한 구성 속에서, 괴물을 통해 사회상과 인간군상의 여러 측면들을 비추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해독함과 더불어, 생각해봄직한 질문들을 비교적 쉬운 언어로 독자들에게 던진다. 대중문화 리터러시(popular culture literacy)의 일환인 셈이다.
따라서 문화이론이나 문학사회학과 같은 이론적 배경에 근거한 분석적 서술 혹은 괴물의 계보학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괴물 자체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을 시도하는 전문학술서가 아니라, ‘괴물 서사’들을 다루는 교양인문서라는 점을 책을 선택하기에 앞서 분명히 인지할 할 필요가 있다. 텍스트분석 내지 담론분석과 같은 접근에 익숙한 나로서는 외려 서사창작을 전공한 두 저자들의 접근이 다소 참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흡혈귀라는 환상은 장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 환상은 인간의 필요와 목적에 의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흡혈귀는 한때 블라드 체페슈나 엘리자베스 바토리 같은 귀족 살인마의 상징이었고, 교회에 의해 페스트 창궐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예술가들의 간택을 받아 낭만과 탐미의 아이콘으로 미화되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흡혈귀를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에 빗대었지요. 또 흡혈귀는 상극의 존재인 히틀러와 유대인, 모두와 동일시되기도 했습니다. 문화산업에 의해 백마 탄 왕자로 분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흡혈귀는 인간 역사의 한 부분이자, 고갈되지 않는 상징입니다. 불멸을 획득한 서사이기도 하고요. 뱀파이어라는 -피비린내 옅어진- 이름과 함께. (책, 38쪽)
왜, 어떻게 괴물이 만들어졌는지, 괴물을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말하려 하지 않은 것들이 어떻게 괴물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지. 이 책은 두 개의 메인 텍스트들을 교차시켜 읽으면서 괴물 서사의 이면을 짚어준다. 괴물에 대한 서사화의 욕망과 괴물 서사에 내포된 인간과 세계의 모순-우리 안의 괴물성-을 돌아보게끔 한다.
괴물 이야기를 다루는 다양한 대중문화 텍스트로부터 욕망, 자본, 생명, 공포, 국가 등 추상적 주제에 속하는 논쟁적인 질문들을 이끌어내고, 이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독자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이 책이 지닌 강점이다. 청소년에서 대학생 1~2학년 정도의 독자층을 예상하고 쓴 것으로 생각되지만, 글쓰기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접근 방식은 특정한 대상을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풀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덕목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장점은 함께 읽을거리들을 풍부하게 제시해준다는 점이다. 챕터마다 두 개의 메인 텍스트를 교차하여 읽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각 챕터의 본문 안에는 메인 텍스트 외에도 고대 신화나 민간 설화, 영화, 소설, 극, 회화 작품 등 다양한 서브 텍스트들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한 덕택에, 다소 예측이 되는 주제를 띤 챕터를 읽을 때에도 결코 진부하지만은 않은 읽기의 재미를 제공한다.
<우리 괴물을 말해요>는 괴물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나갈 수 있을지, 괴물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우리’들에 대해서는 어떤 점들을 성찰해볼 수 있을지 생각의 길로 들어서는 문턱까지 독자들을 초대한다.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 볼 것이냐는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난 독자 개개인의 몫일 테다. 예를 들어, 유일하게 저자 ‘나’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마지막 <YAHOO vs 황국의 제국> 챕터처럼 괴물의 뱃속과 같은 사회에 사는 ‘나’의 경험.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또는 챕터와 챕터를 맞부딪쳐 볼 수도 있다. 욕망의 두려운 착취자인 뱀파이어를 다루는 <불멸하는 매혹자> 챕터와 자본가로 변모하는 드라큘라 백작을 다루는 <더욱 강해져 돌아온 자본가> 챕터를 교차시킨다면 어떨까. ‘스타’라는 표상이자 주체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력한 매혹자인 동시에 대자본의 축적 논리를 배후에 두고 있다. 대중은 열광하면서 분노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동시에 증오하고 혐오한다. 대중으로부터 잊혀지고 시장에서 가치를 잃은 ‘과거의 스타’는 이따금씩 미디어에, 사람들의 입에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괴물 이야기의 습성이 그러하듯이.
페르세우스는 방패를 거울처럼 비추어 괴물 메두사를 돌로 만들고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혜의 여신이 그 거울 같은 방패 한 가운데에 메두사의 머리를 매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괴물은 늘 우리와 함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들은 여전히 두려워하면서, 서늘한 공포에 전율하면서, 그 방패를 들춰보고픈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이야기 속 괴물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무더위를 내쫓기라도 하려는 듯 8월 극장가에는 괴물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프레데터>, <메가로돈>, 그리고 조금은 깜찍한 괴물들이 등장하는 <몬스터 호텔>까지. 괴물은 아마도 계속해서 이야기될 것이고, 또한 괴물은 계속해서 말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괴물이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도 없이 인간을 몰살시킬 때 공포를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괴물의 무자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괴물에게서 기시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조차 모르고 있던 공포가 눈앞의 괴물로 인해 형태를 갖추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괴물은 여전히 “우리들 자신에 대해 말할 것이 있거나 보여줄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되돌아옵니다. 비록 그들이 오락으로 향유되고 소비될지라도. (책, 286쪽)


괴물은 여전히 "우리들 자신에 대해 말할 것이 있거나 보여줄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되돌아옵니다. 비록 그들이 오락으로 향유되고 소비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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