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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경님의 서재
  • 하얼빈
  • 김훈
  • 14,400원 (10%800)
  • 2022-08-03
  • : 33,153

여러 갈래의 철도가 와 닿았다가 흩어져 가는 하얼빈역에서 두 사람의 운명이 맞닿았다가 흩어진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둘은 ‘동양 평화’라는 똑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동양 평화의 의미는 너무도 다르다.


이토는 문명의 길에서 앞선 자가 선의로써 뒤처진 자를 개발 유도하여 동양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서 선진화된 일본이 조선을 하나로 흡수하는 것이 마치 문명을 깨치게 해주는 일인 양 포장과 선전을 해대는 기술 또한 일품이다. 기사에 쓰는 글의 표현, 사진을 찍는 각도를 지시하는 모습을 읽고 있자니 동양판 히틀러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에 반해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여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도마 안중근. 둘 사이에 흐를 적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 이토는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자가 누구인지도 몰랐겠지. 안중근이 계속 궁금해하는 것처럼 나 또한 궁금하다. 이토는 죽기 직전 누가 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 느꼈을까, 짐작이라도 했을까.


숭고한 의거에 젊음을 불사른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은 작가의 시각이 좋았다. 안중근 외에도 하얼빈 의거와 얽힌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는데, 빌렘과 뮈텔 신부의 에피소드가 나올 때는 감정이 참 복잡해졌다. 물론 종교를 믿는 이로서 살인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조선에서 종교 박해가 행해졌다는 이유로 군함을 타고 들어오는 신부와 군인들에게는, 많은 조선인을 죽인 이토에게는 겨누지 않는 비난과 책망을 안중근에게만 쏟는 뮈텔 신부가 섭섭했다. 소설 속 이야기이니 완전한 진실은 아니겠으나, 프랑스 군함의 만행에 대해선 ‘하느님의 역사는 인간이 헤아리기 힘들다’라고 생각하고, 대학을 세우는 일을 도와달라는 안중근의 말에 조선에 대학은 가당치도 않다고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뮈텔. 당시 유럽 열강도 땅 따먹기 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그들과 같은 짓을 하는 일본에 더 너그러워 보이는 느낌까지 들었달까. 그래도 다행히 사형을 당하기 전 빌렘 신부를 만날 수 있었으니 죽음을 앞두고 있던 안중근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어릴 적엔 위인들은 보통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의연하게 결의를 보이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철없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쩌면 이제는 그 결의 뒤의 인간적인 번뇌와 고민 등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나이가 된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안중근이, 우덕순이, 김아려가 하는 생각에 감히 인간적인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투박하고 진솔한 대화도 참 좋았다.


어렸을 적 읽은 위인전을 시작으로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책,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등 나름 많은 이야기를 접해왔는데, <하얼빈>은 여타의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지금까지 봐온 것들은 사건이 사건인 만큼 시작부터 극적인 장면, 혹은 대사들과 그의 32년 인생의 뜨거움으로 가슴 찌릿하게 찔러대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마치 다큐멘터리, 물기 쫙 뺀 르포르타주를 읽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독자인 나의 감정은 더 요동치고 눈물은 더 터져 나왔다. 특징이던 그 유려한 묘사를 버리고 담담하고 담백한 단문들로만 이런 책을 써내다니, 역시 김훈이다.

하루빨리 안 의사의 유해가 우리 땅으로 돌아올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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