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 선생님은 역사가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것이라 하셨다. 그 다음부터는 역사 서적을 읽을 때면 이 책은 어떤 입장에서 쓰인 책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가 크고 생각해보니 이 관점은 너무 편협한 것이었나 싶다. 승자든, 패자든, 그들은 보통 지배자이며 가해자였다. 그 역사의 피바람 속에 휘말린 수많은 목숨의 입장에서는.
나름 역사서를 많이 읽었지만, 갑자기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책이 아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였다는 우스움은 제쳐두고.
어쨌든, 처음으로 소련의 굴락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본 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였고, 홀로코스트만을 이야기하는 책을 본 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어쩌다보니 피해자의 입장에서 쓴 책으로 이 시기의 동유럽 역사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의 인과관계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절절한 슬픔에 밀려 눈이 퉁퉁 붓고 며칠 꿈자리만 사나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마주한 이 책, <피에 젖은 땅>.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이건 또 얼마나 내 목을 조일까 싶어 겁을 내다, 티머시 스나이더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고 사게 되었다. 제3국(미국) 사람이니 직접적인 피해자의 입장은 아니겠다 싶은 마음이 반, 스탈린과 히틀러가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의 생명을, 그것도 스탈린은 자국민의 생명까지 앗으려는 결정을 했는지 이성적인 시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펼친 책은 서두부터 충격적인 내용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용소에서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다시 읽게 될까 겁내며 넘긴 책장에는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희생자 대다수를 낳은 곳은 집단 수용소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스탈린과 히틀러의 정책으로 인해 숨진 이들은 1400만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홀로코스트의 희생자, 혹은 수용소 노역의 희생자는 절반이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숫자는 전쟁과 무관한 비전쟁지역의 민간인 희생을 나타낸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눈 뜬 장님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지금껏 읽었으나 읽지 못한 이야기를 이제야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라 자세히 읽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던 내가 아는 동유럽의 비극은 영화 '쉰들러리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이런...
어느 부분에서 읽었더라... 그나마 수용소에 들어갔다고 다 죽는 건 아니고 80%? 90%? 정도가 생존했다고 하니, 그 비극에는 후대에 이야기를 전할 이가 남아 책으로, 영화로 쓰여 많이 남았나 보다. 식량을 빼앗기고 아사한 사람들, 누군가를 식인하고, 제 살을 식인한 이들의 이야기는 누가 남기겠는가.
1930년대 초, 전 유럽에 기근이 창궐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모든 이가 공평하게 고난을 이지 않는 법. 스탈린에게나 히틀러에게나 그저 약탈해야 할 곡창지대에 불과했던 우크라이나는 이 기근을 남들보다 훨씬 끔찍하게 지나야 했으며, 도처에 굶어죽은 이의 시신이 넘쳐났다. 황제에게 빵을 요구하고 개혁을 바라며 시위하던 러시아의 민중들은 사회주의의 꽃망울이 터지면 자신들이 아사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누구한테 해 끼친 적 없이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부농이라는 국가의 선전에 내몰리며 재산, 심지어 목숨을 뺏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스탈린은 대기근 속에 죽을 자와 죽지 않을 자를 선택했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집단 농장에서 일한 건 같은데 다른 지역의 농민들에게는 빵을 주고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기보다 그냥 내 집에서 굶어죽는 쪽을 택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근묵자흑이라 했다. 두 사람은 친구가 아니었으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로의 거울이었나 보다.
소련이 몇몇 지방에, 혹은 소수 민족에 박해와 대숙청을 가하더니, 다음 주자는 그것을 업그레이드했다. 독일에 관해서는 현대 독일의 역사를 바라보는 멋진 태도 덕분에 그래도 소련에 비해 더 알려져 있다. 가스실까지 사람을 옮기는 운임도 아끼고 싶어서 오는 길에 처형하고, 아예 수용소까지 보내지도 않고 처형하고. 스탈린에게 배운 건지 둘은 통하는 게 있는 건지 먹을 것을 뺏고 아사시킨다. 소련의 집단 농장은 사실 처음부터 기아로 아사시킬 작정이 아니라 비효율성에 의한 결과물이었지만, 독일은 작정하고 사전에 아사 계획을 짰다. 정복지의 주민들 전체를 굶겨 독일인들이 적당히 먹고 사는 계획.
스탈린이 생각하는 미래, 히틀러가 바라는 미래에는 소련과 독일의 평화로운 공존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서로 시커먼 속내를 숨기고 오래지 않아 깨질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독일이 조약을 깨고 소련을 공격하면서 스탈린에게 시달리던 러시아의 국민들은 히틀러가 침공하자 쌍수를 들고 반겼으나, 히틀러의 나치는 오직 독일인만을 사람(?)으로 여겼다. 30년대에 스탈린에 의해 피를 흘린 땅은, 40년대에 히틀러로 인해 또다시 피를 흘렸다.
읽으면서 너무나 기분이 나빴던 것은 단어와 그 내면의 부조화였다. '아사 계획'은 곧 자신들의 독일인을 살리는 계획이었으며, '재정착'은 대량학살을 의미했다. 마치 전에 빅터 프랭클의 책을 읽을 때,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마치 샤워라도 시켜주는 것처럼 모든 옷과 소지품을 두고 들어가게 하고, 실상은 시체를 처리하면서 소지품 뒤적이는 노동력조차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와 같은 기분 나쁨.
책을 읽으면서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희생자가 나고, 나라가 무너지고, 한 비극이 지나면 다음 비극이 찾아오는 우크라이나(이때는 소련령이었지만)와 폴란드의 이야기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근대의 무너져가는 조선과 눈에 불을 켠 침략자 일본 사이에서 스러져 간 조선의 백성들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을지도, 6 25 때 북한군이 점령하면 남한군에 동조했다고 죽고, 남한군이 점령하면 북한군에 동조했다고 죽어간 얼마 오래지 않은 우리네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나 많은 자료에도 불구하고 수치는 추정이다. 스나이더의 깊은 뜻까지는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5% 정도는 이해하지 않았을까. 하하. 스탈린과 히틀러의 몇 차례에 걸친 대량학살은 사람들을 숫자로 바꿔버렸다. 이 숫자들을 찾고, 사람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류의 말로 스나이더는 글을 마무리한다. 왜 죽었는지, 물론 단순하게는 히틀러 때문에, 혹은 스탈린 때문에 죽었겠지 말할 수 있겠지만, 스나이더의 말처럼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듯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그들의 과거도, 우리의 과거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러움을 밝혀낼 수야 없겠지만 어떤 시류에서 누가 왜 어떻게 죽어갔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국가와 사건을 분리하고, 단위를 세분하고, 그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춘다면 진정으로 시대의 역사를 읽을 수 없는 것 같다. '전유럽이 대기근이었으니까 여기저기 굶어죽은 사람이 많았겠지, 뭐,' 하는 식으로 보지 않도록, 좀 더 날카로운 시각과 너른 시야를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
물론 작가가 들였을 공만큼, 역자가 쏟았을 정성만큼 깊이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역사를 보는 내 시각이 아주 조금은 넓어졌기를 기대하며 작가와 역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