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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델라
  •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 박관찬
  • 16,650원 (10%920)
  • 2024-05-01
  • : 831
작가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내민다. 보고 들을 수 없으니 손바닥에다가 글을 써 달라고 한다. 책의 초반 이 부분에서 한참 동안 읽기를 멈췄다. 수년 전에 읽은 기억을 더듬어 인간의 감각에 대해 쓴 책을 찾아 뒤져봤다.

로봇을 이용한 수술을 할 때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집도의의 촉각을 어떻게 로봇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라고 한다. 의사는 영상(시각)을 통해 수술부위를 보면서 로봇 팔의 움직임을 제어하지만 보다 섬세한 터치를 요하는 경우 시각이 촉각을 대체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로봇수술을 하는 의사가 시각적으로 몰입하다보면 손 끝에 뭔가 느껴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뇌가 조종하는 일종의 감각치환으로 해석된다.

촉각은 피부에서부터 전달되는 압력과 질감을 뇌가 재해석하는 고도의 신체현상이다. 시각을 잃은 사람은 청각으로, 청각을 잃은 사람은 시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시,청각 기능 모두가 제한된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촉각이다. 기계가 쉽게 배우기 어려운 생명체의 원초적인 감각과 인간의 두개골 안에 있는 오래된 블랙박스가 제대로 연결되어야 촉각에 의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학교 다닐 때 앞 자리 친구의 등판에 글을 써서 의사를 전달해 본 경험이 있을 텐데, 그 뭉텅한 촉각은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기능을 넘어 두 사람의 친밀감을 더해주는 마법같은 기능도 있었던 듯 하다. 웬만큼 친하지 않고는 그러한 접촉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소통방식인 손바닥 필담은 오래 전 그 간질간질했던 감각을 떠올리게 하면서, 잊고 산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아스라함을 불러 일으킨다.

손바닥 필담 이야기로 시작한 작가의 인생은 힘겹기 짝이 없었던 세상과의 의사소통으로 점철되었다. 불화는 피할 수 없었다. 비장애인들의 틈새에서 이렇다 할 배려 없이 정글 같은 유년의 학창시절을 보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기의 통과의례에서 섬세하지 못한 제도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었다. 그 이후 멋진 첼로연주자 모습으로 표지를 꽉 채운 이 책이 나온 걸로 봐서, 그의 성취가 만만치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겠지만, 그 성취 과정을 톺아보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여전히 아프고, 장애인의 일상사에 더 많은 관심과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 곳곳엔 여전히 많은 선인과 현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청년은오늘도첼로를연주합니다 /박관찬 /꿈꿀자유

강병철 선생의 작은 출판사 <꿈꿀자유>의 선한 영향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길은 책을 많이 사서 읽어 주는 일.
한 권은 그저 얻었으니, 몇 권을 더 사서 주변에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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