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중미님의 작품은 진솔하다. 작가의 자전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인 데다 작가의 삶의 태도가 녹아 있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거대한 뿌리'에 등장하는 군상들 속에서 바로 내 주변의 친척들, 가까운 이웃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야, 이년아. 아무리 내 꿈이 양갈보였겠냐?"
가난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미군 기지로 흘러 들어가 청춘을 저당잡혀야 했던, 한때 가수가 꿈이었다는 미자 언니,
"미국 사람들은 입양을 많이 한대. 동양 애, 서양 애 안 가리고 장애아도 안 가려. 우리 둘째 언니 친구가 애를 낳았는데 장님이래. 근데 걔도 입양 보냈잖아. 거기 가면 장애아도 잘 산대. 입양이란 게 나쁜 게 아니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청하여 미국으로 입양을 간 경숙이,
"우리 아빠 옛날에는 안 그랬어. 우리 전곡리 살 때 되게 좋았어. 우리 아빠 무뚝뚝해도 진짜 착했거든. 우리 아빠 월남만 안 갔으면 우리 여기로 이사 안 왔겠지? 솔직히 그때가 훨씬 낫지. 학비도 무료로 다 대주지. 생활비 적게 들지. 월남에 안 갔으면 우리 아빠가 저렇게 변하지 않았을 거 아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불구가 된 데다가 사람들을 베트콩으로 착각하여 편안할 날이 없는 해자 아버지,
"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어. 도대체 튀기가 뭐 어쨌다는 거야? 물건은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왜 우리 같은 애들은 싫어해? 나도 반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제야. 그리고 나머지 반은 너희들하고 똑같다고. 도대체 왜 우리가 너희들한테 무시를 당해야 하냐고, 왜?"
미군 병사였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에 괴로워하는 혼혈아 재민이,
"나 다시는 한국에 안 올 거야. 한국 사람들 넌덜머리가 나. 난 이름도 미국식으로 바꾸고 말도 다 잊어버릴 거야."
흑인 병사의 아이를 낳은 후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를 피해 한국 땅을 떠난 윤희 언니,
"아무 미래도 없는 이주노동자라니요? 그럼 난 뭔데요? 나는 미래가 있어요? 선생님 친구처럼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는 괜찮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갖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자히드를 사랑하고, 자히드의 아이를 가진 정아......
'거대한 뿌리'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덥석 잡고 싶다.
'거대한 뿌리'는 교사와 학생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기에 좋은 작품이다. 아동문학 작가로 알려진 김중미님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독서 토론 논술 등 학습 제재로 삼기에도 적합하다.
한겨레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를 보니 다음 작품은 폭력의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김중미님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다음 작품도 가뭄에 단비처럼 무척 반가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