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작가 유홍준의 따끈따끈한 신간,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부끄럽지만 그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너무나 유명해서 읽지 않았는데도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매번 책을 고를 때마다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였다.
이번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 책이라는 호기심에 손에 집어 들기는 했지만, 전작들과 비슷할 것이라는 지레짐작과 책의 두께감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져 옆으로 슬쩍 미뤄두길 몇 차례. 하지만 무심코 넘긴 첫 페이지에 눈길이 사로잡히고 나니 어느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30년 만에 내놓은 책에서작가 스스로 '잡문'이라고 칭하는 글들은 유홍준 작가가 현실 속에서 부딪혀가며 느낀 삶의 향기와 체취가 짙게 담겨 있다. 게다가 책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입말을 살린 문체에는 진중한 듯하면서도 은은한 유머가 배여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나의 글쓰기는 일반적인 산문 형식을 벗어난 '잡문(雜文)'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내가 젊은 시절에 루쉰의 잡문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내 또래와 내 선배들 세대에게 루쉰은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루쉰은 자신의 글을 잡문이라고 했고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등 루쉰 잡문집이 여러 형태로 나와 있다. 그러나 루쉰의 잡문이란 그냥 잡문이 아니라 일상사에서 시작해 사상의 담론에까지 이르는 글이다. (…중략…) 내가 '답사기'라고 해놓고 이 소리 저 소리 다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런 잡문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 6 페이지, 「나의 잡문과 글쓰기」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사실 무겁게 쓰려면 하염없이 무겁게 쓸 수 있을 것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읽는 내내 무겁다거나, 거부감이 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그의 글 한 편 한 편 속에 남아있는 각양각색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생생하고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 평생을 살아가며 얻고 이루어 낸 삶의 궤적을 타인이 이렇게 편하게 읽어볼 수 있다니, 너무 쉽게 얻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자기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도자기를 보면서 잘생겼다, 멋지다, 아름답다, 우아하다, 귀엽다, 앙증맞다, 호방하다, 당당하다, 수수하다, 소박하다 등등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하곤 한다. 그런 미적 향수와 미적 태도를 통해 우리의 정서는 순화되고 치유된다.
- 81 페이지, 「백자 달항아리,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
정자를 세우는 것은 다만 놀고 구경하자는 뜻만이 아니다.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판을 바라보면서 농사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게 하고, 민가를 바라보면서는 민생의 고통을 알게 하고, 나루터와 다리를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내를 잘 건너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 91 페이지, 「'한국의 이미지'로서 누정의 미학」
모두들 한바탕 웃으면서 관리 영역이 제일 좁아 보이는 나에게 "문화재청장은 관리 면적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나는 대답했다.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것은 5대 궁궐과 40개 조선왕릉이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국보· 보물뿐만 아니라 300억 평 땅속에 있는 매장문화재도 관리하고 1,200억 평 바다에 빠져 있는 침몰선 200여 척의 수중문화재도 관리합니다. 게다가 천연기념물로 몽골에 가 있는 검독수리, 태국에 가 있는 노랑부리저어새가 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에 청장들은 박장대소하면서 '어마어마하다' '가볍게 생각해서 미안하다' '우리 문화재청장의 업무 영역이 가장 넓은 것으로 인정합시다'라며 박수를 치려는 순간 기상청장이 나섰다.
"우리 기상청은 업무 면적이 평수로 계산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 세상 곳곳에 상수가 있다)라고 했다.
- 107~108 페이지, 「문화재청장의 관할 영역」
책의 말미에 실린 「부록 : 나의 글쓰기」에는 글쓰기를 위한 작가의 조언과 글쓰기에 관련된 작가의 친필 자료가 담겨있다. 쉽고 편안하게, 하지만 글쓰기의 핵심이 한가득 담겨있어 마치 '글쓰기'라는 어려운 시험의 족보를 받아 본 느낌이다.
우리 사회의 시대의 흐름과 그 흐름을 만들어낸 굵직한 사람들의 삶이 글 속에 은은하게 흐르며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건들도 배우게 되고, 그 누구보다 충실히 주어진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면면도 느낄 수 있어 여러모로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만남의 반가움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삶의 향기가 어린 유홍준 작가의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30년 만의 잡문집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길, 계속 곁에 남아 넓은 울림을 남기길 기대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받았으며,
제 생각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