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미국 탄광으로 떠났던 호르두발은 겨우 700달러를 손에 쥔 채 8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5년 동안 안부를 전하지 못했던 탓일까. 그가 그려온 집의 풍경과는 달리, 아내는 차갑고 아이는 어색할 뿐이다. 일꾼 슈테판을 외려 살갑게 대하는 가족들, 너무도 달라진 마을의 풍광, 낯설고 배타적인 이웃들 사이에서 그는 귀향의 기쁨 대신 깊은 외로움에 빠진다. 결국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기만 했던 관계의 줄다리기는 이내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그가 홀로 언덕에 올라 평원을 내려다볼 때 흐르는 독백으로부터 우리는 그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사소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어가면서도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못했던 호르두발. 1부에서는 고립된 채 침잠하는 호르두발의 내면이 주로 그려졌다면, 2부는 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추측하는 추리소설 형식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조차 끝내 소외된 채 남겨졌던 호르두발이라는 인간을, 우리는 생각해 본다.
그리고 여기 봐. 희끄무레한 버섯이 마른 나뭇잎을 치켜들고 자라네. 이야, 버섯대가 얼마나 강하고 하얀지 몰라. 하지만 그거 알아? 널 여기 그냥 둘 거야, 버섯아, 그물버섯아. 뻐꾹채도 초롱꽃도 따 모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딸기는 하피아에게 한 움큼 따다줘야지. 숲 가장자리에서. 거기가 제일 달콤하니까.- P77
거대한 평화가 호르두발을 뒤덮고, 그것은 너무나 거대해서 어쩐지 고통스럽다. (중략) 너무 무거운 평화를 지고 힘겨워서 숨을 몰아 쉬고 있어. 아, 아직은 일어나기 싫어. 이 거대한 평화를 짊어지고 골짜기까지 내려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못 하겠어. 이렇게 조용히, 조용히 누운 채 이 무게가 차분히 가라앉아 마음에 평평하게 스며들 때까지 있어야지. 이렇게 며칠이고 몇 주고 누워서 기다리다보면 평화의 짐이 스스로 무너질지도 몰라.- P84
그런데 호르두발, 저 언덕에서부터 마음 속에 품고 내려온 평화가 있었지? 널 아래로 잡아당기는 그 무게는 뭐야? 거기서 뭔가 너무 많이 가져왔지. 그건 바로 슬픔이야.-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