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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님의 서재
  • 안녕, 미스터 타이거
  • 나혜림
  • 13,500원 (10%750)
  • 2026-05-08
  • : 1,435
#도서협찬

혹 그 땅에서는, 문명하였다는 그 세상에서는, 여자도 무엇이 될 수 있나요? 여자도 발버둥 치고 싸울 수 있나요? 내키는 대로 시절을 욕심낼 수 있나요? -p.125


시절이 격동하니 몸도 마음도 졸아붙을 만 한데 가기 계손향의 의기는 험한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다. 활자로 압축된 배경 속에서도 녹록지 않은 시대상이 선연하다. 개화기 서양 문물, 일제강점기, 만세 운동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배치하고, 버텨내는 민초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두껍지 않은 분량 속에 담긴 생애들마다 사연 없는 이가 없어서, 오래 공들여 읽게 된다. 특히 계손향이 부르는 노랫말과 들려주는 전래동화에 덧 비치는 그의 애상과 감성, 시대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애틋하다.

“그대와 같은 것을 보고 있”(p.29)다는 미리견 사절단 노월은 계손향이 더 넓은 세상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그녀의 삶은, 기생과 망국이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다.

흔한 클리셰인가 싶지만 막상 읽어보면 로맨스소설로 한정하기에 서사가 뻗어가는 보폭이 크다. 시대와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계손향의 삶은 구태의연함을 버렸다.

특히 단순히 욕망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노월과의 사랑은 은은하고 운치 있는 ‘붓꽃의 향기‘를 닮아 있다. 사랑에 매몰되어 삶을 종속시키거나 자신을 저버리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그 순간은 계손향이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긍정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모든 것을 억압하는 시절을 살아내면서도 “재주라면 나라 하나 망하게 할 만큼 좋다“고 너스레를 떨고, ”이미 망해버렸으니 이제 그 재주를 구하는 데“(p.239) 쓸 거라는 포부를 내보이는 계손향의 면면이 매력적이다.

깨어 있는 자, 더 멀리 내다보는 자는 어느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장, 생생한 시대상 묘사, 진취적인 주인공이 어우러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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