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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님의 서재
  • 우리, 메아리처럼
  • 앤절라 미영 허
  • 19,800원 (10%1,100)
  • 2026-05-20
  • : 2,310
#도서협찬

독창적인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책이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만큼 이 이야기가 가진 의미가 무거운 까닭일 것이다. 한국 무속 신앙적 요소-모계전승을 의미하는가 하면, 더 큰 카테고리 ‘여성’으로 묶어 그들의 목소리,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아리가 되고자 한다.

저자가 구축한 세계관은 문장으로 친절하게 읽히기 보다는 실감하거나 감각한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줄곧 한국 설화나 앞선 세대의 여성에 관해 말하지만 시작과 끝이 선명한 서사가 아니라 주인공 엘사 박의 삶의 궤적으로, 가족에서 기인한 정신적 고통, 기억등으로 드러난다.



엘사 박은 이민자 부모님을 둔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또 그런 마음에서 기인한 죄책감으로 번민한다. 특히, 어머니의 히스테릭한 언사, 그녀가 늘어놓는 가족적 저주, 한국 설화, 민담에 얽힌 여성서사는 엘사를 옭아매려 든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거부하려 애쓰지만 운명 앞에서 모든 노력은 다 헛된 것만 같다.

붉은 댕기 머리를 땋은 ‘친구’를 자꾸만 보는 엘사, 흡사 신병과 닮은 경험은 어머니에게서 엘사에게로 이어진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녀를 “통해 전달된 증언과 어쩌면 복수를 요구하는 조상의 명령”(p.14)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오컬트 소설과의 차이점은, 이 책에서는 무속 신앙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영적인 현상들이 메아리처럼, 기록에서 소외된 여성 억압의 역사를 전달하는 “기억”으로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읽는 내내, 엘사가 보는 붉은 댕기 머리 친구는 영적인 존재 혹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여성들의 기억, 메아리, 목소리라고 볼 수도 있고, 미국인이지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한국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엘사는 스스로를 “침입자”라고 표현한다. “시간에서,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 카페인과 넘치는 햇살 속을 떠다니는 부유물”(p.18), 현실에 모호하게 걸쳐진, 그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책을 관통하는 서사 줄기는 이런 엘사의 영적 탐구 여정이나 다름없다.

특히 소설의 중간 챕터마다 자리한 한국설화는 이 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해하려 들 때, 해묵은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여성이자 자매들의 계보는 시대와 혈연을 넘어서 여전히 힘이 있다.

에밀레종, 선녀와 나무꾼, 오작교 설화, 심청이야기, 여우자매, 가야 수로왕의 왕비 - 허황옥 설화, 그림자 자매(장화 홍련전의 다른 버전으로 보임), 바리데기 설화를 소개한다. 이것은 엘사의 어머니에게서 이어진 ‘기억들’일 것이다. 위대한 여성들에게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되고 우리가 “그들의 삶에서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p.95)한다는 탄식은, 처절한 성찰이다.

특히 엘사가 이 모든 것에서 놓여나기 위해 입자 물리학자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떠오르는 기억을 막을 수는 없”(p.79)다고 자인하며 기어이 “기억”을 하고 “누군가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을 찾아 헤매기 시작”(p.608)한다. 이는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고, 모든 여성들의 비극적 서사와 연대하겠다는 하나의 선언이자 여성 계보를 그대로 보여주는 서사라고 느꼈다.

이민자로서 겪는 정체성과 인종차별, 디아스포라 문학, 여성서사가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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