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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점 지하 대피자들
  • 전예진
  • 16,200원 (10%900)
  • 2026-01-27
  • : 960
#도서협찬 #서평단

“잘 들어요, 혹시 뭐가 잘 안 되면,” 주호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적강산 자연휴양림 고라니 매점으로 오면 돼요.” (p.14)

“나는 우리가 서로한테 그런 존재로 남으면 좋겠어요. 내가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기억으로.”(p.192)



다만 쉬고 싶을 뿐인데 세상은 쉼에도 이유를 대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직 활동도 안 하고 놀고먹는“ ”잉여 인간”(p233)이라 서슴없이 비난한다. 사회가 원하는 틀과 질서에서 조금만 엇나가도 가차없이 날세우며 달려들면서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남루한 변명으로는 이기적인 민낯을 채 가릴 수도 없다.

『매점 지하 대피자들』에는 소위 “인생 망한 사람”(p.209)들이 그런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처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휴양림에 위치한 ‘고라니 매점’의 지하에서는 기대했던 고립 대신 연대의 장이 펼쳐진다.

주인공 선우는 사회생활에 진저리치다 적강산 고라니 매점을 찾게 된다. 어메니티로 헤드렌턴과 야전삽을 내어주는 이곳은 매점 아래로 직접 굴을 파고 나름의 질서에 맞춰 투숙하는 ‘호텔’이다.

굴을 파는 행위는 생존이자 사회에서의 분투와도 닮아있다. 온몸을 다 우그러뜨리고 기어서 길을 내는 동안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흙먼지, 막다른 길, 예기치 못한 상황들, 진위를 파악하기 힘든 사건, 타인을 향한 경계와 같은 것들과 마주친다.

어느 순간, 지하 대피자들은 느슨한 연결로 서로를 간신히 지탱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사이다. 완벽한 연대와 끈끈한 우정, 곡진한 보살핌과 같은 것들로부터 도리어 자유롭다. 공동체라는 결속 안에서도 뚜렷한 ‘나’를 잃지는 않는다. 섣불리 구원을 말하지도, 희망을 주워섬지도 않아 오히려 진솔하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모든 것들이 휩쓸려 가는 장면은 속엣말을 다 쏟아내는 통곡같다. 선우를 비롯해 각자의 이유와 사연으로 은둔을 자처하던 이들을 지상으로, 지붕 위로 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연락이라도 하고”(p.256) 지내자 말을 건네면서 미래를 기약한다. “이제 어떻게들 살 거”(p.256)냐는 물음을 내던질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자라 있다.

작가의 문장에는 요란하지 않은 위로가 담겼다. 나와 어딘가 닮은 점을 찾아가며 읽었기에 굴로 숨었던 대피자들의 다음 일상이 궁금해진다.
#전예진 #매점지하대피자들 #한국문학 #젊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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