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chloe 2025/08/1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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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존 엘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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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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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경계’의 관점에서 세계사 주요 사건들을 들추어보고 있다. 이 경계는 국경선에서부터 시간대, 바다, 하늘 나아가 우주에 관한 내용까지로, 저자는 광범위한 내용들을 심도 깊게 다룬다. 배타적 경제수역과 우주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 나아가 도시 내에서의 인종 차별, 민족 내에서 종교 갈등 등까지 ‘경계’의 의미를 확장해서 찬찬히 훑고 이야기한다.
각 장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건들을 읽다보면 인류의 역사는 이 경계, 선 긋기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선을 그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도, 종교도, 다수의 이익이나 선의가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이 모이면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있는 곳에선 욕념이 배제될 수 없다. 이렇듯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울타리를 치고 그것을 지키고 싶은 것 역시 당연하기에 이 ‘경계’는 인류사의 단초라 하겠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또 알려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땅 가르기에 급급했던 자들의 기록들은 씁쓸했다.
멀게는 고대 이집트부터 가깝게는 한반도 휴전선까지 경계에 얽힌 역사사건, 갈등, 전쟁, 종교문제, 흥망성쇠 등을 촘촘하게 엮었다. 유산, 역사, 외부효과 이렇게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세계사 지식이 없어도 읽기 편한 3부를 먼저 읽는 방법도 추천하고 있다.(p.414)
물론 배경지식이 있다면 읽기 편하겠지만 수박겉핥기 식으로 큼직한 사건들만 대충 아는 나에겐 마냥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반도 휴전선을 다룬 25장에서는 매우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한반도 휴전선을 다루면서 보여준 저자의 통찰력은 날카롭다. 그는 “사소한 충돌 하나가 핵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장소(p.221)”라고 언급하면서 비무장 지대가 이름과 달리 고도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과 자연 생태계의 보존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명시한다. 이 휴전선이 정해지는 데에도 딱히 엄청난 신념과 가치가 기준이 되지 않았다. 단지 행정적 편의에서 시작된 선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남“(p.227)게 된 것이다. 경계, 국경선이 가진 무게에 비하면 그 시작은 허무할 정도이다.
덧붙여 저자가 머릿말에 책이 가진 한계에 대해 밝힌 점이 인상깊었다. 그는 “영국인, 영국 시민, 유럽인, 서구인,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내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p.13)고 고백한다. 지정학적 갈등을 해체하고 읽어내는 탁월한 고찰 앞에 그것이 겸손의 미덕임을 알겠다.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과 경계의 서사가 각각 둘이 아닌 하나임이 명백하단 걸 여실하게 느꼈다. 경계를 만드는 것이 인간이기에, 경계가 가진 의미를 관통하는 것은 곧 인간의 의지다. 이 책은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키워드가 경계임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해석해 내게끔 격려한다.
쉽지 않지만 의미 있는, 깊생을 원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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