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끝, 파랑
chloe 2025/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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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의 끝, 파랑
- 이폴리트
- 33,060원 (5%↓
1,740) - 2025-07-05
: 810
#도서제공 #서평단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 찬 책이다. 종이는 경계가 있지만 거기 담긴 그림은 경계가 없어, 읽는 독자를 순식간에 지중해 난민 구조 현장으로 끌어다 둔다. 인간다움, 연대의식, 그리고 개개인의 삶에 대해서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된다.
저자 이폴리트는 탐사보도 전문 그래픽노블 작가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현장감 넘치는 상황을 만화로 실감나게 남겨, 난민 문제에 대해 낯선 독자도 충분히 상황에 공감하고 마음 쏟게 만든다. 직접 인도주의 구조단체 ‘SOS 메디테라네’의 구조선 오션 바이킹호에 동승해 지중해 난민들을 구조하는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바다에 얽힌 삶이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는데 아름답고도 참혹하다. 바다라는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휴양지, 안락한 순간을 누릴 수 있는 곳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기로가 갈리는 곳이다. 죽음을 건너서 비로소 새 삶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여기 깃든 인류애와 연대가 눈물겹다. 세상은 다정하지만은 않아서 구조하고도 항구에 정박할 수 없게 한다거나 구조선 눈 앞에서 난민들을 가로채기도 한다. 냉담한 현실과 코로나 펜데믹이 한데 겹쳤을 때에는 끝없이 절망만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들의 무책임은 SOS 메디테라네가 존재하는 이유(p.108)’이기에 이들은 행동할 뿐이다. 구조선에 오르는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역량을 가지고‘(p.112) 한 팀으로서 뭉치고 서로 배려하기를 수없이 숙지한다. 뭍에서 사소할 일도 바다에서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조 대원들뿐 아니라 기억에 남는 몇몇 난민들의 이야기도 남겨둔다. 그중에서도 배에서 주운 유니콘 인형을 들고 뛰놀던 아이샤가 인상깊다. 인간이 가진 생명력과 희망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또 지나온 시간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일단 구조선에 싣고 항구에 닿을 수 있는 ‘허가’가 떨어졌다는 사실에 다만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어지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출렁대는 파도가 삼킨 또 다른 삶들, 마음들은 묻어둘 수밖에 없다. 지금껏 많은 이들을 살렸지만 모든 이들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많은 것이지만, 아무것도 아니다.‘(p.194)라고 담담하게 적힌 문장이 무겁게 다가왔다.
저자는 갖가지 부조리한 것들 속에서도 명징하게 기록을 남기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난민문제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를 나로서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지금껏 내가 외면해왔던 삶의 형태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감히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모습에서 숭고함마저 느꼈다.
가슴 서늘한 이야기를 잔잔한 파도처럼 풀어두고 있는 책이다. 읽고 나면 새 지평이 열린다. 만화 형식이어서 어린 친구들도 읽기 부담없다는 게 또 하나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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