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많이 탈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극호
chloe 2025/06/27 12:49
chloe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악녀서
- 천쉐
- 16,650원 (10%↓
920) - 2025-06-13
: 3,400
#도서제공 #서평단
#악녀서 #글항아리 #말많음주의 #스포주의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문장과 자기 해체적 성향이 짙어서 산문시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이 많아서 감각적인 문체가 가진 장점이 더 극대화된다. 여백이 많아 그다지 친절한 전개는 아니지만 고백체로 이어져서 몰입이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 취향을 많이 탈 만한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는 호다.
네 편의 소설 모두 적나라한 성애가 껴들어 있으나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꼭 동성 간의 사랑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 관한 거듭된 성찰로 결국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끔 확장시키면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 과정에 여자들 간의 사랑이 반드시 있다. 몸과 마음이 겹치고, 감정이 뒤얽히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첫번째 소설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의 주인공 차오차오의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순탄하지 않았던 유년기의 여파로 엄마가 음란하다고 날세우지만 끝내 그녀를 향한 사랑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 여정에는 동성의 연인 아쑤가 있다.
차오차오가 갖고 있던 사랑에 관한 갈망은 글쓰기로 완성되는데 이 글쓰기를 독려하는 존재는 아쑤다. 별안간 삶에 등장한 그녀는 차오차오에게 처음으로 절정에 이르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쑤의 입을 빌려 글쓰기가 곧 차오차오의 운명이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게 될 거라 끊임없이 말한다. 아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차오차오를 당기는데 그곳에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자 하고 달성한다.
아쑤는 등장과 마찬가지로 퇴장도 느닷없고 그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차오차오 뿐이다. 하지만 사색할수록 생생한 기억들이 가득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장면에서 오히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징해지곤 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나는 아쑤라고 해.”
“나는 차오차오야.”
자 됐다! (p.32)
이 문단에서 오래 머물렀다. 아쑤를 만나고 결국 다 되었다는 것.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들은 아쑤와 만나 서로 이해하고 포개어지면서 마침내 이루었다. 격정적인 성관계는 서로의 속마음, 삶의 궤적 등을 이해하게 장치이고, 그 근원에는 모태에서부터 이어졌던 엄마와의 관계가 있다. 차오차오는 ‘줄곧 내 몸 안에 닫힌 자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해왔(p.26)’고 어쩌면 그건 아쑤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두번째 소설 「이상한 집」의 주인공은 마흔살 색정 소설가다. 스스로도 별 볼 일 없는 존재라 여겼건만 뜨거운 청춘, 아름다운 외피를 걸친 타오타오라는 여자는 이런 나를 사랑한다. 급기야 함께 더없는 쾌락의 세계로 뛰어든다. 나는 타오타오를 붙들어 두기 위해 설서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결말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큰이모와 작은 이모, 작은 이모의 하얀 연꽃같은 가슴에서 나온 ‘아이’의 이야기에는 사랑과 치정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을 울게 하는 사탕수수밭이 있고 앳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죽음을 맞닥뜨린 작은 이모의 미소가 있다. 결말이 영원히 없다면 타오타오는 영원히 곁에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엮는 이야기 속 사랑과 그녀가 하는 사랑이 닮아 있다.
세번째 소설 「밤의 미궁」에서는 주인공이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자문한다. 이 소설집의 화두라고 생각했다. 네개의 단편들을 한번에 꿰는 질문이다. 네명의 주인공이 모두 정체성을 두고 번민하는 세월을 산다. 넷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또 하나의 ’나‘라고 여겨지는데 작가가 서문에서 진실한 사람이 하나의 유형으로만 존재한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p.14)고 이미 말한 까닭이다.
「밤의 미궁」은 실험적인 문체로 주인공의 속마음을 괄호 속에 병기하고 있는데 이로써 주인공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어쩌면 모두 환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일게 한다. 남편 아리, 나, 그리고 술집 미궁에서 만난 아페이 세사람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모든 인생은 미궁 속 흰 쥐가 된다. 이유도 모르고 출구를 찾지만 출구는 또다시 가중된 곤경과 완전히 낯선 미궁으로 연신 이어진다.
마지막 소설 「고양이가 죽은 뒤」는 과거와 현재 모두 고양이들이 중요한 매개체다. 다만 그들의 죽음은 너무 절망과 맞닿아 있지는 않다. 죽음 이후에 주인공 나를 둘러싼 세계가 늘 재편되고 새로운 만남이 찾아온다. 어린 시절에는 따로 살던 아버지가 나타나고, 현재 ‘고양이’를 보낸 뒤에는 2년만에 사랑하는 아마오와 재회한다.
아마오는 주인공 나의 애인이다. 중성적인-남성에 가까운-외향이 매력적인 아마오는 여자이고, 샴 고양이 아바오의 주인이다. 처음 나와 아마오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이 샴 고양이다.
‘아바오가 좋아하는 여자는 틀림없이 나를 좋아할 거예요.(p.181)’ 아마오는 과연 첫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뒤에 고백할 때도 ‘영혼을 빼앗긴 것처럼’ 그리고 ‘우리 생명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안다고 말한다. 플러팅의 대가다.
‘나’는 사람보다 고양이 앞에서 곧잘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1인칭 고백체로 내용 전개도 비슷하다. 애인 아마오는 마음도 주고 표현도 퍼붓고 잘 드러내지만 주인공 나는 다소간 소극적이다. 사랑하지만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에서 주저하다 ‘마침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인정한다.
요약하자면 입덕 부정기 겪다가 운명처럼 다시 만나 애인과 재결합하는 눈물 겨운 이야기고 그 속에서 아마오의 입을 빌려 삶과 정체성과 나 자신을 인정해야 종국에 사랑의 합일에 대해 말할 수 있단 걸 보여준다.
세상의 눈으로 재단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주인공들이 나와서 제목이 악녀서인가 싶다. 95년도에 이 작품을 읽었다면 더 그랬을 만 하다고 여겨진다. 끝에 출간 당시 작가의 후기도 그대로 실려있다. 구판에서 무엇도 덜거나 더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의 후기는 한 편의 고백 편지여서 이 책 전체가 일련의 고백과도 같다고 느껴진다. 앞서 실린 소설 네 편 모두 1인칭 고백체로 감정을 깊게 토로하고 속엣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어서 줄거리보다는 인물이 가진 사랑, 정염, 갈망 그리고 엄마를 향한 근원적인 애증과 결핍 등이 더 촘촘하다. 취향에 맞다면 몇번이고 재독하게 될, 여운이 긴 책이다. 「천사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의 주인공이 말미에 엄마의 무덤(끝) 앞에서 엄마의 자궁 속(시작)인 것처럼 몸을 말았듯이, 또 첫 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