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아작의 대한지적단으로 참여하여 가제본을 읽고 작성했습니다.)
또래가 귀찮고 오직 책 읽는 것만이 좋아서 쉬는 시간에도 하교 길에도 손에서 놓지 않고, 밤에도 엄마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손전등으로 책을 읽던 소녀는 어느덧 책을 읽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다른 다양한 취미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아주 가끔씩만 책을 읽는다. 예전에 그토록 열렬하게 독서를 사랑했던 소녀를 생각한다면 꽤 이상한 일이다.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신 프레야’는 굉장히 오랜만에 자의적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밤 늦게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씻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책은 놀라운 속도로 내 마음을 장악해갔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와 캐릭터, 예측하기 어려운 스토리 라인은 한 ‘책 냉담자’를 함락시켰다.
어느 누가 프레야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피터와 게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보이는 캣니스와 그토록 똑똑하고 정의로운데도 해리의 친구 역할에 만족하는 헤르미온느가 묘사되는 방식과 비교하면 프레야는 소설 주인공으로서의 덕목에 충실하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며, 다정하고 통찰력 있는 프레야의 모습은 이 책을 읽는 수많은 소녀들이 닮고 싶어 하는 영웅 그 자체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고 사랑해왔던 영웅들은 근본적으로는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복의 대가로 미녀를 얻는 전사나, 모험을 마치고 성장한 소년이 첫사랑과 재회하는 이야기는 결코 나와 동화될 수 없는 지점에서 멈춘다. 이처럼 아버지-아들 서사와 소년 성장기로 점철된 소설 속에서 여성의 존재는 조력자나 부속물에 머무른다는 것이 내가 책을 멀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감히 변명해 본다.
그러한 점에서 프레야의 등장은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비유를 인용할 만 하다.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독서광 소녀들이 열렬하게 반길 만한 영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프레야는 틀 안에 박힌 ‘여성 영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동감을 지닌 ‘영웅 프레야’이다. 프레야는 사랑의 여신답게 자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우며, 또한 그녀도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한편 전쟁의 여신으로서 사납고 강인하며 정의롭다. 프레야는 다른 이들이 잘못된 길을 택할 때 기다리고 계획을 세우고 사람의 모아 자신의 뜻을 실현시켜 나갈 줄 아는 신이다. 이러한 프레야의 모습은 영웅이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부분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와이의 세 여신과 세크멧은 아직 캐릭터의 필요성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듯 하고, 사만다는 미묘함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프레야가 더욱 강력해질 앞으로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그러한 사소한 결점쯤은 눈감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너무나 재미있다. 프레야를 믿고 그녀의 계획을 따라가는 여정은 너무나 짜릿하며, 나단과의 관계는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릴 적에 만화로 보는 북유럽 신화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인 프레이야를 보며 참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속성이 모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 책 속에서 프레이야는 금목걸이를 위해 오딘에게 애걸하고 난쟁이들에게 입 맞추는 여신이었다. 인간들의 편견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프레야’에게 축복을! 그리고 다시 내가 책을 기웃거리게 만든 프레이야 여신님께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