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내 옆에 있는 사람』으로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이병률 시인의 신작 산문집.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좋아서 그래』는 달에서 선보이는 ‘여행그림책’ 시리즈의 첫 책으로, 예술과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시인이 발견한 장면들이 다채로운 그림과 함께 담겨 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은 곳이 파리였기에 등단 후 시집 한 권 내지 못해 막막해하던 시절, 시인은 또다시 파리로 향한다. 그렇게 돌아온 파리의 길목에서 시인은 이 도시가 그에게 사랑이었음을 고백한다.
시인에게 파리는 “사랑을 경유하여 사랑으로” 가는 사람들, “평균을 거부하”는 사람들, “모두가 반짝이라도 알려”지길 원하는 요즘 세상에 “오래 익혀 멀리 뻗으려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그들을 두고 “참 묘하지”라 말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이 그 매력에 사로잡히고 만 시인은 오늘도 그곳으로 “돌아갈 거”라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서 그래.” 그곳이 좋아서, 그 사람들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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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지 않다 한들 그건 또 어떤가. 우린 아직 뛰어들지 않았을뿐. 어쩌면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에 불과할 뿐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모두가 반짝이라도 알려져 한탕이나마 하길 원하는 이 천박한 세상에서 오래 익혀 멀리 뻗으려는 당신이 여기에 들른다. 아직도 창고에서 숨 쉬고 있을 재능들에게, 아직 피어나지 못한 청춘의 가슴들에게, 이 카페는 넌지시 말해주는 것만 같다. 시간이 우리를 잠시 막고 있을 뿐. 시간은 당신의 모든 가능성을 숙성시키는 중이라고. p21
나이를 먹는다는 건 뭔가요. 파리 몽마르트묘지에서 세바스티앙이 내게 물었다. 눈금이라는 말이 퍼뜩 생각났다. 내 눈금도 꽤 되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눈금을 채워가는 것인지 비워가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눈금을 갉아먹는것. 눈금을 쌓아가는 것. 그게 뭐라도 좋으니 눈금을 따라 살아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자의 눈금인지. 저울의 눈금인지는 그것을 대하는 감도 차이일 수도 있겠다. 나와, 당신은, 삶을 대하는 온도계의 눈금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 p40
나의 묘비명에는 무엇을 적을 거냐는 질문을 몇 번 받는다. 매번 대답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얼른 떠올려본다. — 술을 좋아했고, 술보다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보다는 자신을 좋아했을지도 모를 한 사람이 여기 사랑과 함께 잠들어 있다. p43
그래. 사람은 다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걸 난 파리에서 알게 된 것 같아. 한 사람의 분위기란건 분명 정신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신이 밀고 나가는게 있다면 그것을 힘으로 치환하는 사람들. 그래서 유연한 사람들. 타인에게조차 유연한 사람들. '논리와 감정이 균형하다면 그것이 지성인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이들의 철학이 깔린 삶에 관통해본다면 이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마법이라 믿는 사람들이 아닐까. P90
그곳의 빛들은 달랐습니다.봄날에 쏟아지는 칼날 같은 빛줄기를 파리로 몰려든 인상파 화가들은 저마다 잡아챘죠. 신이 만든 것 가운데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나에겐 햇빛인데 파리의 빛들 아래서는 무릎 꿇고 허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길고 어둑한 겨울 기운이 걷히고 나면 파리사람들은 햇빛 아래서 살짝 미쳐요. 미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미치도록 드센 아름다움인지 나는 알거든요. p106
김씨와 둘이 소꼽장난하듯 단촐하게 지내다가
모처럼 꼬맹이의 병간호와 엄마노릇이 힘들었을까?!...
어제 저녁부터 열도 나고 으슬으슬 추운게 몸살 기운이 있다.
김씨도 큰아이가 감기약도 못먹을텐데 다음에 오라고 하고
내생각도 같아서 큰아이에게 연락을 했다.
큰아이 좋아하는 딸기를 비롯해서 과일을 잔뜩 사놓았는데
사위 통해 보내려 했더니 엄마도 비타민이 필요할꺼라며
본인은 괜찮다고 엄마 먹으라고 하네... ㅠ.ㅠ
다행인지 걱정했던 독감은 아닌듯 자고 나니 콧물만 줄줄 흐를뿐
열은 내렸다.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 뒹글거릴것이 분명 하므로
든든히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 지금은 별다방이다.
"나도 돌아갈 거야.
그쪽으로 걸어가면 사랑이니까."
좋아서 그래.
'좋아서 그래'는 이병률작가의 신작으로
구입한지는 오래 되었는데 오늘에야 다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 파리의 이야기에 더해
알록달록 삽화들이 우울했던 기분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듯 하다.
한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고 우울했는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저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였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과 함께 책을 읽는 일...
그리고 내곁엔 날 위해 기도해주고 응원해주는
많은 친구들과 이웃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 시간이다.
책속에 문장을 응용해 내 묘비명에 이렇게 써야겠다.
'커피를 좋아했고,
커피보다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보다는 자신을 좋아했을지도 모를 한 사람이
여기 사랑과 함께 잠들어 있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