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성
하늘이 만든 것에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굽이쳐 흐르는 강의 곡선이 그렇고 솟구쳐 오른 산봉우리의 능선이 그렇다. 수천 번 수만 번 쳐다봐도 하늘의 구름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돌이 있지만 하나같이 그 형태와 빛깔은 다르다.
똑같은 돌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돌 하나하나는 모두가 완성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연은 큰 돌이든 작은 돌이든, 돌 하나하나에 독자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P82
뽕나무
거친 뽕잎이 부드러운 비단이 되기 위해서는 누에에게 먹혀야 한다. 거친 인생의 육체가 고운 영혼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죽음에게 먹혀야 한다.
뽕나무의 입장에서 본다면 누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그러나 그 누에 때문에 뽕나무는 더 귀중하고,
생명의 보호를 받는 나무가 되었다.- P101
시간
우리는 두 번 다시 똑같은 강물 속에 서 있을 수 없다. 물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도 그런 것이다. 우리는 같은 현실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P104
꽃
꽃은 평화가 아니다
저항이다
빛깔을 갖는다는 것,
눈 덮인 땅에서 빛깔을 갖는다는 것
그건 평화가 아니라 투쟁이다- P109
꽃은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꽃은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사랑을, 평화를, 인정을 그리고 꿈을 가르쳐준다. 아무렇게나 벼랑에 흩어져 핀 진달래는 소박한 전원의 사랑을 말한다. 3, 4월의 벚꽃은 감정을 들뜨게 하고 5, 6월의 달리아와 해바라기는 눈부신 열정과 강렬한 생을 맛보게 한다. 그윽한 국화, 싸늘한 수선화, 쓸쓸한 달맞이꽃,
청수한 제라늄, 뜨거운 샐비어, 그 모든 꽃들은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과 기도와 사색의 자세를 알려준다.
꽃은 허식이 아니다. 부지런한 뿌리의 노동 속에서 가꾸어진 땀의 결정이다. 딱딱한 돌과 음흉한 땅벌레들을 피해 맑은 수분을 퍼 올리고 거친 흙더미에서 양분을 획득한 슬기의 깃발이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 표현을 위해서 밝은 색채와 유현한 향취를 갖는다.
그랬을 때만이 정말 꽃은 꽃답게 필 수가 있다.
열매는 자기 표현에 대한 하나의 보상일 따름이다.- P110
이파리
나무 이파리들은 수천수만 개의 잎이 있어도 각도가 다 다르다. 그래야 햇볕을 쬘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방향으로 나면 전부 그늘이 될 것인데 다른 방향으로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똑같이 햇볕을 받을 수가 있다. 놀라운 세계다.
인간들도 나무 이파리처럼 서로 방해하지 않고 공생할 수 있는 그러한 배열을 알 수만 있다면 분쟁이 생길 일이 없다.- P113
이름
우리는 자기의 직장 내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을 밀고자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호루라기 부는 사람)‘라고 한다. 이름 하나로 부도덕한 밀고자가 다른 곳에서는 반칙한 선수에게 경고의 호루라기를 부는 당당한 심판자가 된다.
정치적인 시선과 그 행위는 언제나 이름 짓기.
이름 부르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한쪽에서 의식화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편에서는 세뇌화라고 한다. 다양한 의견은 중구난방,
자유경쟁은 약육강식이 되고, 사소한 일상적 언어 표현에서도 신중한 사람은 우유부단한 사람,
신념은 고집불통, 열정은 광기로 각기 평가의 수식어가 달라진다.- P131
인재
말 중에 천리마가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게 천리마인 줄 모르고 수레를 끌게 하는 거야.
단숨에 천리를 달리는 게 짐짝을 끌라고 하면 소만도 못하잖아. 백락이라는 사람은 말야,
이거 딱 보면 명마라는 걸 알아봐. 그래서 이렇게 말이 있는데 백락이라는 사람이 딱 일 초만 멈춰 서서 봐도 말의 값이 몇십 배가 뛰는 거야.
천리마가 중요해? 백락이 중요해? 백락은 천리마는 아니지만 천리마를 알아보는 사람.
그러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천리마는 아니야.
뭐가 돼야 해? 백락이 되어야 하는 거야. 자기는 천리마가 아니더라도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그게 인재보다도 나은 거야.-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