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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뜻하는 영어의 에너미enemy는 무시무시한 말이 아니다.
꼭 죽여야만 내가 사는 대상이 아니다. 어원으로 보면 단지사랑이 없는 남, 친구가 아니라는 뜻밖에 없다. 그러니까 적을사랑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 P109
노동

그동안 문명은 노동에서 활동으로가 아니라 활동에서 노동으로 역류했다. 모든 노동자들을 활동하는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자기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정치 활동이 정치 노동으로 변해 부패를 낳았고, 예술의 창조 활동이 노동으로 변질해 남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먹는 것이 된다.
21세기 한국 정치의 최대 과제는 분명하다. ‘먹는 것이 남는 사회‘를 ‘보람과 꿈이 남는 사회‘로 개혁하는 일이다.- P117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터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봐야 터가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 눈에 보이는 건축을 믿지 말고, 그것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인간도 그렇다.
옷 입은 것이나 생김새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터, 내가 뿌리내린 기본 근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P138
마찬가지

마찬가지라는 말의 어원을 캐보면 ‘마치 한 가지라‘는 말이 줄어 된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잎사귀는 제각기 달라도 그것이 달려 있는 가지는 똑같은 가지이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라는 말에는 겉보기는 달라도 그 근본을 따지면 마치 한 가지와도 같다는 오묘한 뜻이 들어 있는 셈이다.- P148
밑줄

누구나 독서를 하지만 나는 요령이 있다.
어디에 밑줄을 쳐야 하는가를 안다. 그러다 보니 관계없는 책들을 읽어도 엮을 줄 안다. 말로 읽어도 되로밖에 못 내놓는 사람이 있지만, 되로 읽고 말로 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읽으면서 이 책, 저 책을 꿰어놓는다.- P163
음악

음악 그 자체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미 시원적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그 근원에는 음악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는 그 자리에도 음악이 있습니다.
영원한 회귀, 그렇기에 음악은 인간의 영혼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의미 이전의 세계.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세계이다.
하지만 등에 언어의혹을 메고 다니는 인간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듯이 그런 세계로 들어갈 수는 없다.
음악만이 그 바늘귀로 자유로이 왕래한다.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 있다.
언어나 색채는 언제나 우리 앞에서 속삭이고 있는데 음악은 우리의 영혼 안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혼 속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영원 속으로,
실재하지도 않는 영원 속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P198
정답

예술가, 문학가는 해답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을 주고, 있는 것을 표현할 뿐입니다.
아파하거나 슬퍼하는 것밖에 못해요.
슬픔이 뭔지, 아프다는 게 뭔지 의사나
심리학자는 알아도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P207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고전부터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
고전이란 단순히 옛날 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내용은 변함없지만 언제나 새로운 자양을 공급해주는 것, 몇 세기를 두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새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이라 하겠다.- P211
까마귀

노아가 방주에서 물이 줄었는지 알아보라고 먼저 까마귀를 보냈습니다. 까마귀가 검다고 해서, 시체를 파먹는 새라고 해서 임무조차 주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저는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한 번 죄를 지었던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날 한 번 속였던 사람이니까 그들을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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