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뜻하는 school의 어원은 더 흥미롭습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가 아닌, 그 이전의 고대 그리스어 ‘스콜레schole, orodi에서 출발합니다. 이 단어가 라틴어 ‘schola‘가 되고, 다시 영어로 ‘school‘이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어 ‘스콜레‘의 본래 뜻은 ‘공부‘가 아니라, ‘여가‘, ‘한가함‘, ‘자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진정한 ‘여유‘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함이나 지루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계를 위한 육체노동이나 외부의 강요된 의무에서 벗어나,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공부하는 시간‘을 의미했습니다. 즉, 스콜레는- P399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세계의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확보된 ‘휴식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자기 자신과 좋아하는 대상(취향)에 헌신하고 몰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상의 난이도에 비례해 실력이 계속 성장하는 ‘플로우‘ 경험이 부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부해야 더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공부해야 남을 시기 질투하며 미워하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P400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 경험에서 우리는 가장 완벽한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공부해야하는 겁니다. 감탄할 일이 없다면 감탄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잊고 있었던 감탄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415
19세기 말,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덴마크의 생리학자 카를 게오르그 랑게Carl Georg Lange는 비슷한 시기에 거의 동일한 정서이론을 주장합니다. 1884년에 발표한 제임스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울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고, 때리기 때문에 분노를 느끼며, 떨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we feel sorry because we cry, angrystrike, afraid because we tremble‘ 한편, 그 이듬해인 1885년에 랑게는이렇게 주장합니다. ‘감정은 신체 변화에 대한 감각이다The emotionis the sensation of the bodily changes". 이 문장을 좀 더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감정이란, 몸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우리가 느끼는 바로 그 경험이다. ‘감정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 느끼는 방식이다‘라는 둘의 주장은 후대에 함께 엮어서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 ofcmotion‘이라 불리게 됩니다. 제임스-랑게 이론을 적용하면, 내 우울한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해결책이 보입니다. 감탄의 습관을 들- P416
이면 됩니다. 감탄할 일이 생겨서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감탄하면 감탄할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P417
‘인정‘이 머리로 하는 승인이라면, ‘감탄‘은 그 승인이 감정으로 구현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존중‘이 더해집니다. 존중은 우리가 서로 감탄할 수 있게 해주는 상호작용의 문법입니다. 존중의 맥락이 존재해야, 감탄도 경험하고 인정감도 느낄 수있습니다. 존중은 삶의 목적을 확인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존중받고 싶어 하는 겁니다.- P426
나는 소통에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소통에 관한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선수‘가 ‘훌륭한 감독‘이 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수들이 헤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수 때 지긋지긋하게 헤매본 사람이 좋은 감독이 됩니다. 내가 감히 소통에 관한 책을 쓰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웬만하면 조용히 있으려고 하지만, 한번 말을 시작하면 죄다
‘잘난 체‘로 끝납니다. 어쩌다 한번 흥분해서 말을 시작하면, 남에게 상처 주는 말만 골라 하는 듯합니다. 남에게 준 상처는 고스란히 내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여수에서 개 한 마리 데리고 혼자살며, ‘내 소통 방식‘에 대해 아주 자주 고민합니다. 그래서 내가 쓰는 소통에 관한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P432
이어령 선생님은 생전에 한국 학자들이 ‘누구를 전공했다‘는이야기를 참 불편해했습니다. 내가 ‘비고츠키 전공자‘라고 말했을 때, ‘언제 비고츠키를 뛰어넘을 거여?‘ 했습니다. 비고츠키를 뛰어넘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이 책을 쓰면서 문화심리학자로서 나만의 생각과 이론을 정리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P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