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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틀, 비법을 가르쳐주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막막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나름대로 터득한 요령은 있지만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건 ‘붕어빵 틀‘을 가르쳐주는 것이고, 그틀은 사람들을 굴레에 갇히게 한다. 틀은 남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자기만의 형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남의 글을 참고하는게 좋다. 신문 칼럼에 관심 있으면 신문을 집중적으로 보며 관찰하고, 잡지 글을 쓰고 싶으면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자꾸 써보면 뭔가습득되는 게 있다. 여행에세이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얘기한 것들을 상기하면서 글을 분석하다 보면 뭔가 보일 것이다. 그걸 스스로 터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같은 노력과 고민 없이 붕어빵틀을 통해 쉽게 글을 쓰면 발전이 없다. 물론 무조건 쓰라는 게 아니다. 틀이 필요하지만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틀을 만들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고민이다.- P143
저자로서 남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표절과 다르다. 나는 남의 여행서도 가끔 읽지만, 특히 철학·사회학 분야의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공부하고 익혀서 그 내용들을 여행기에 풀어 넣는다. 그리고 출처를 밝힌다. 그건 표절이 아니라공부하고 배우는 것이다.
문장의 표절뿐만 아니라 주제, 편집, 구성의 표절도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은 법적으로 명확하게 가리기 힘들어 보인다. 현실에서는 ‘어떤 책이 떴다‘ 하면 참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종종 비슷하게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같은 영역의 책을 참고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가이드북이 가이드북을 적당히 베낀 후각색하고, 여행기가 여행기를 흉내 내면 근친상간과 비슷하다 생물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책에서도 그건 안 좋다. 서로 영역이 다른것들을 참고하고 출처를 밝힌 후, 자기 식대로 표현하면 문화의 발전이 되지만,- P160
대중서, 여행기에 주석을 달거나 참고문헌을 밝히면 지적 허세를 피우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밝히는 이유는 표절을 피하고, 원저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수많은자료를 건드릴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한 독자에게좋은 책을 소개하는 서비스의 의미도 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학설, 역사적 사실 등을쉽게 쓰려면 완전히 이해한 후 자기 말로 요약 혹은 해설을 곁들여야 한다. 그건 인용의 수준을 넘는다. 읽는 사람은 쉬워도 쓰는 사람은 힘들다. 그래서 덜 익히거나 잘못 이해한 내용을 자기 식대로쓰다 보면 오류가 발생한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자료를 두루두루섭렵하고 고민해야 한다. 책 하나 달랑 보고 글재주로 녹이는 태도는 많은 오류를 생산할 수가 있다.- P176
콘셉트는 작가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중심이지만, 독자들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사회적인 관점, 시장성의 관점에서도 접근한다. 책을 내려면 글만 잘 쓰면 안 된다. 무조건 시장 트렌드를 좇는 행위도 바람직하지 않다. 작품성, 사회성, 상품성 등을 모두 감안하면서 콘셉트를 잡는데 이 과정이 힘들다. 콘셉트를 잘 잡아야구성도 잘 세워지고 글도 잘 써지며 출판사에서도 환영받는다. 무조건 여행 많이 하고 글의 재능이 있다고 콘셉트를 잘 잡는 것은아니다. 삶, 세상, 인간, 여행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고민과성찰이 있어야 한다. 콘셉트를 외부의 트렌드에서만 잡으면 선동적인 구호 혹은 광고 카피처럼 전락된다. 자신의 뻑적지근한 삶과 사회적인 흐름이 조화롭게 결합되면 좋은 콘셉트가 나온다.- P192
사진에세이에서는 어떤 사진들을 선택해야 할까?
멋진 사진도 필요하지만 에세이가 결합되는 장르이기에 글이 잘 나오는 사진이 중요하다. 글이 잘 나오려면 메시지가 분명한 사진이좋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사건이든, 감성이든 사진을 보는 순간독자를 확 빨아들이는 초점과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이사진을 찍었으며, 이 사진을 찍는 순간 나를 빨아들인 것이 무엇이었나? 그걸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일반 여행가의 사진은 글을보조하는 역할을 하지만 사진에세이에서는 사진 자체에 힘이 있어야 한다. 아름답거나, 멋진 사진 이전에 강렬한 메시지, 초점이 있는 사진이 글을 잘 불러낸다.- P208
또한 전업작가들은 한때 여행 경험을 평생 우려먹는 게 아니라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공부해야 한다. 시간, 에너지, 비용이 계속 재투자되어야만 하는데 수익성은 높지 않다. 결국 돈을벌기 위해 신문·잡지 등에 글을 쓰고, 대학·문화센터 · 기업체 등- P224
의 강의, 방송 등 다방면으로 뛰어야 한다. 그나마 이 길에서 10,
20년 버틴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 그게 현실인데 출판사에는 여행기 원고가 끊임없이 투고되고, 여행작가 글쓰기 강의에는사람들이 몰린다. 여행을 즐기고 나서 책이 나오면 좋고, 안 나와도 좋다는 생각을 하면 괜찮지만 전업 여행작가의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나는 히피처럼 살다가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책이 늘어날수록 살림은 쭈그러져 왔다. 그 과정에서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은 평생 가슴에 안고 갈 짐이 되었다.
그런데도 왜 이 길을 가는가? 내가 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단지 여행과 글을 생계 수단이 아니라 나의 삶을 열어가는 행위로 대했기때문이다.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희열도 느꼈다.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내 주변에는 가끔 보인다. 생활은 여유롭지 않지만그래도 정신은 살아 있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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