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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미래를바꿈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도 ‘기억이란 단지 과거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시간을 열려는 노력‘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나도 체험 속에서 이런 경험을 했는데, 결국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실의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그건 불가능하고, 새로운 현재와미래를 열어가는 노력인 것이다.
나는 종종 여행기는 현실이라는 밀가루에 ‘이스트‘가 뿌려져서약간 부풀게 만들어진 빵과 같다고 얘기한다. 빵이 거짓말로 만들어진 허구는 아니다. 또 이스트가 과도한 목적성·상업성이라면 질나쁜 빵이 된다. 내가 말하는 이스트는 자연스럽게 내부에서 솟구치는 자신의 가치관, 감성, 상상력, 현재의 기분, 그리고 언어의 속성을 말한다. 그것이 없으면 여행기는 빡빡한 보고서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여행기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다. 여행기는 허구도 아니지만 사실적인 보고서도 아니다. 가이드북이나문화탐사기 등은 좀 더 사실에 가깝지만, 그것 역시 수많은 현실경험 중에서 저자의 프레임이 걸러낸 부분적인 기억을 편집한 것이다. 다만 여행기가 말랑말랑한 빵이라면 가이드북이나 문화탐사기는 좀 딱딱한 빵이라는 것이 다를 뿐,- P53
무조건 예쁘고, 아름답고, 간결한 글이 좋은 글이 아니다. 결혼식에 갈 때는 정장 차림을 하고, 운동할 때는 운동복을 입는 것처럼 분위기에 맞는 문체가 어울린다. 처음에는 남의 것을 흉내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자기 것을 찾아가는 노력을 끝없이 해야 한다. 작품에 맞는 문체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체는 수많은 시행착오,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금씩 얻어진다.- P73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것을 써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쓰면서 자연스럽게 배합하면 된다. 예를 들면 빠르게 전개되는 서술도 계속반복되면 지루해진다. 마라톤을 쉬지 않고 계속하는 느낌이 든다.
이때 가끔 주변 풍경을 보여주는 식으로 상황, 혹은 자기 심리에대한 묘사를 해주면 속도 조절을 하며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반면 묘사가 너무 오래, 길게, 밀도 있게 전개되어도 지루해진다. 그때는 다시 서술, 독백, 대화 등을 섞는 게 좋다. 그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한 편의 글을 서술, 묘사, 독백, 대화 중 하나를 선택해서 쓸수도 있고 섞어서 쓸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달라지고 쓰는 이의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P85
여행기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고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이다. 정답은 따로 없고 자기에게 끌리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 여행을 하면 신바람이 나고 그런 글을 쓰면 희열을 느낀다.
그러므로 먼저 여행기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자기에게 맞는것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렵게 느껴지고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겸허하게 배우고, 시시하게 느껴진다 해도 왜 책이 되어 나왔을까를 생각해보고, 자신과 다른 얘기도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고,
유치하게 보여도 자기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이해하고, 너무 예스러워 보여도 나이 든 사람의 인생을 유추하면서 자기 앞날에 닥칠일을 상상해보아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자기 위치가 파악된다. 너무 자기 경험, 자기 기준, 자기 욕망에 집착하면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P96
좋은 글, 나쁜 글을 판단하기란 힘들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기에 관한 한, 나는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글‘이 가장 좋은 것이라 본다. 언어에 대해 깊이 들어가면 ‘솔직함‘에 대해 회의가 생기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나는 본다. 매끄럽고 문학적이고현학적인 글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솔직하지 않은 태도로 머리를 굴려가며 쓰는 글은 향수를 뿌린 종이 장미일 뿐이다.
또 명쾌하고 잘 읽히는 쉬운 글이 좋다. 여행기는 대중이 많이보기 때문이다. 쉬운 글은 초등학생 일기 같은 글이 아니라 잘 읽히면서도 울림이 있는 글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경험이 푹익어야 그런 글이 나온다. 사람들은 종종 쉬운 글은 쉽게 쓴 것이라고 착각을 하지만, 읽기에 어려운 글이 저자가 쉽게 쓴 글이고쉬운 글은 어렵게 쓴 경우가 많다. 글을 아는 사람들은 깊은 내용을 쉽게 표현한 글들을 높이 평가한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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