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되었던 책. 특히 작가가 들려주는 어린시절 이야기가 좋았다. 작가가 어린시절을 떠올릴 때는 시종일관 따듯한 그 느낌이 좋았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지만 조부모님과 두 숙부님 내외와 고모까지 한집에서 사는 대가족이었다. 사촌이 생기기 전까지 집안에 어린애가 나 하나뿐이어서 귀염도 많이 받았지만 어리광이 심하고 음식을 많이 가리고 누가 조금만 나한테 언짢게 해도 할머니한테 일러바치는 질 나쁜 고자질쟁이였던 것 같다. 그런 나쁜 버릇을 서서히 고쳐준 것도 엄마였다고 생각한다. 학교 갔다 와서 동무들하고 싸우거나 이지매당한 얘기를 하면서 그 동무를 미워하고 욕하면 엄마는 내 역성을 드는 대신, 그러지 말고 그 동무 좋은 점을 한가지라도 찾아보라고, 며칠이 걸리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동무를 대하면 반드시 한두가지는 좋은 점이 보일 거라고 하셨다.
(중략) 일러바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 차츰 고자질하는 버릇은 없어지게 되었다. (중략) 그리고 엄마가 나한테 하신 것과 똑같은 잔소리를 내 아이들에게 하게 되었고, 내 성질까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 때가 많다.- P63
물의 흐름도 수많은 들과 굴곡을 만남으로써 속도가 조절되듯이 우리의 발전도 반대나 회의하는 입장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곤두박질을 면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P83
가장 그래서는 안 되는 선생님은 악담하는 선생님 아닐까. 내가 들은 어떤 선생님은 입학원서 쓸때 제자가 자기가 가라는 대학 말고 딴 대학을 가겠다고 하자 절대로 원서를 못 써주겠다고 우기다가 나중엔 학부형까지 나서서 겨우 써주긴 했는데, 너 얼마나 잘 되나 내가 끝까지 지켜볼 테니 그런 줄 알라는 저주를 퍼붓더라는 것이다. 그게 그 어머니 가슴에 못이 되어 그 대학에 붙었는데도 그 후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악담이 생각나서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했다.
선생님의 덕담 한마디, 넌 공부는 좀 뒤지지만 부지런하고 심성이 착하니 신임과 사랑을 받는 사회인이 될 거라는 정도의 덕담이라도 그 아이의 일생을 밝게 비출 수 있는 거라면 독한 악담의 폐해 또한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P180
나는 그런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만의 하나라도 내가 훔쳤다는 게 탄로나면 그 수치스러움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어버리거나 집을 나가버리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중략)
만일 그때 엄마가 꼬치꼬치 진상을 추궁했더라면 집은 못 나갔더라도 얼마든지 삐뚜로 나갈 수는 있었을 것 같다.
자존심이 지나치게 예민한 아이한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다면 자존심을 아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엄마가 그렇게 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꼼꼼한 엄마가 그 사건을 꼬치꼬치 추궁하지 않고 그렇게 허술하게 넘아가준 것을 나는 지금까지도 감사하고 있다.- 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