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만 전에(알라딘을 통해서) 알게된 <숨어있는책>(헌책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이 마침 휴일이라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다녀왔다. 집에서 12시경에 출발을 해서 2시경에 신촌역에 도착. 8번 출구로 빠져나와 약도를 보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다만 약도에는 그려져 있던 조이랜드라는 곳이 없어서 한 블럭을 더 갔다가 대략 10초간 당황했었다.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보니 불이 꺼져있어 깜깜했고 주인도 보이질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뻘쭘해져서 서있는데 마침 젊은 아저씨(주인)가 와서 굉장히 수줍게 인사를 하시고는 불을 켜주셨다. 알고 보니 영업시간이 오후 2시부터여서 내가 첫손님이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원래 계획은 10시에 출발해서 12시에 도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2시간 동안 피씨방에서 낡아버린 스타실력으로 버티면서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헌책방이 처음이었던 나는 조금은 들뜬 상태였다. 아무책이나 불쑥 뽑아서 펼쳐보니 노랗게 색바랜 종이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 냄새가. 책방의 규모는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찾아보기가 수월했다. 애초에 한국 문학책을 사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이유는 서양 문학의 경우엔 번역이 중요한데 오래된 책이라면 아무래도 번역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한국 소설 코너 앞에 서자마자 바로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너무 유명해서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안 그래도 살려고 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당최 문학에 대해 아는 게 없다보니 어떤 책을 사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는 작가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한국대표 명작총서'라는 시리즈를 봤는데 마음에 들었다. 작가별로 단편소설이 몇 편 실려있고 뒷부분에 약간의 작품해설이 있는 형식이었다. 괜히 엄한 책 사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이게 좋을듯 싶었다. 그래서 시리즈 중에서 황순원, 김유정, 김동인, 현진건, 이효석 이렇게 5권을 골랐다. 그리고 이청준이 쓴 '이어도'도 샀다.
그리고나서 골목 돌아 지하에 있는 인문, 사회학 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들어가자(역시 아무도 없었다) 젊은 아저씨가 클래식을 틀어주셨는데 마음에 들어버려서 책을 펼쳐들고는 음악만 한참을 듣었다. 여기저기 한참을 봤는데 인문, 사회쪽 책들은 아무래도 요즘 것만 못했다. 그래서 구경은 오래 하고도 김광수라는 사람이 쓴 '논리와 비판적 사고' 한 권만 골라서 나왔다.
모두 합해서 8권을 샀는데 가격이 1만 7천원이었다(얼마 남는다고 5백원 깍아주셨다). 너무도 합리적인 가격에 한동안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요즘 나오는 두꺼운 책 한 권 가격에 8권이라니!!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문제는 무게였다. 이미 가져간 책까지 모두 9권!! 8권을 가방에 억지로 쑤셔넣고 한 권은 손에 들어야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만에 느끼는 묵직한 무게가 어깨를 눌러왔다. 그래도 마음만은 가벼웠다. 숨어있는책 아주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또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