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닌걸.
이혜정 2006/07/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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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증권회사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을 가진, 하루아침에 망해버리는 그는 길바닥에 쓰러져있다. 그런 남자를 또다른 남자가 발견한다. 처음 남자를 발견했을 적엔 그의 겉옷만 달랑 주어가던 남자는 결국 쓰러져있던 남자 자체를 줍게 된다.
남자.
그는 한때 유명했던 산악인이었단다. 울퉁불퉁한 팔뚝 근육과 딱 벌어진 어깨, 날카로운 산기슭을 닮은 남자의 눈매는 다부져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바람소리가 들린다. 어느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던 그가 정작 사랑할 수 있는 건 여자가 아닌 남자였기 때문일까.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 내가 잘할게. 넌 아무 것도 하지마. 일도 하지 말고 그냥 내 곁에만 있어줘.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남자, 여자가 측은하고 여자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사랑해서,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한 사람들.
자신을 돌봐주던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취향'을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 나약한 그가 약에, 술에 취해 이죽거린다. 아, 그런 거였어. 나 한번 먹으려고 그렇게 잘해준 거였어? 둔탁한 발차기에 이어진 한 마디. 함부로 입 놀리지마. 먹으려면 진작에 먹었어.
먹으려면 진작에 먹었어................... 그 한마디가 왜 그렇게 아프게 와닿았을까.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선택의 폭이 좁긴 하겠지만 사랑이 아닌 아랫도리의 욕망을 해소할 대상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남자의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 억눌린 그 한마디에 묻어났기 때문이었을까.
떠남과 되돌아옴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어느새 자리잡은 끈끈한 마음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즈음에 강해보이는 남자가 나약해보이는 남자를 떠나.보낸다. 가라. 그 간결한 한마디 뒤로 남자가 떠나버린 후, 정작 그 누구도 강하거나 나약하지 않다. 사회적 지위이든 육체적인 힘이든 누가 무엇을 더 가졌다고 강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우위'에 불과할테니까.
남자가 돌아왔을 때 생을 저버리려 했던 남자가 말한다.
- 할 말이 있어.
- 나중에 해.
- 지금 할래.
나 너 사랑해도 되냐. 넌 이런말 싫어하겠지만... 처음 널 본 순간부터 널 사랑했었어. 그러니까 나 너 사랑해도 되냐.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시작되는 것이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과 너무나 다른 상대에게 허락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는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닌 우정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간절하게 던지는 한마디, 나 너 사랑해도 되냐.
산을 타는 재주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로 살아가는 것도 어느 순간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아버리는 것도 한순간 직장을, 가정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도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이 모두가 허락.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순간 누군가를 원망하고 무언가를 갈구하며 인정받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로드무비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늘상 어디론가 몸과 마음이 떠도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 영화는 구성이나 편집이 엉성한 단점이 보이기는 했지만 영화가 끝이 나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영화의 소재로는 식상해져가고 있지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네, 둘이 자네 마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감정을 주고받고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집중하는 영화들이 일반화된다면 그것이 특별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많고 많은 사랑 중 하나.로서 받아들여질 것 같다. 로드무비는 그런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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