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그 이상의 것
닉네임 2020/01/2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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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도계의 철학
- 장하석
- 24,300원 (10%↓
1,350) - 2013-10-25
: 2,731
코트를 입고 외출한다. 빅스비한테 물어본 오늘의 날씨는 최고 8도/최저 0도. 지난 며칠 간 최저 기온이 영하 4,5도였던 것에 비하면 따스한 편이다. 롱패딩이 지긋지긋하던 참에 코트를 입을 수 있는 날을 그냥 보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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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기온 0도인 오늘의 기온은 얼음의 어는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온도의 척도는 섭씨로, 물의 어는점인 0도와 끓는점인 100도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이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1기압의 압력에서 적용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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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밥을 지을 때(산에서 취식은 금지입니다,,) 냄비 위에 돌을 올리라는 익숙한 이야기도, 높은 고도에서 낮아진 기압으로 물이 100도 이하에서 끓어 밥이 설익기 때문이다. 당장 그 정도의 대기 압력 변화만으로도 물의 끓는점은 변화한다. 그렇다면 온도계를 처음 만들 때 이렇게 가변적인 수치를 어떻게 표준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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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격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책이 바로 《온도계의 철학》이다. 섭씨온도계를 예로, 1) 0도와 100도라는 고정점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2) 정해진 척도는 어떻게 검증되는지 3) 아주 고온이거나 아주 저온인 경우, 온도계의 물리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4) 추상적인 온도 개념과 물리적인 조작의 조응을 입증하는 것까지, 익숙하게만 써오던 과학적 개념을 역사적, 철학적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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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결론은 그 과정이 완벽하게 맞물린채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외로 꽤 엉성한 합의 속에서 진행되어간다. 이론적으로 해명되지 않았더라도, 아무튼 현상을 제대로 기술해내면 그 방식을 채용하는 식이다. 물론 막무가내는 아니다. 불완전한 지식사에서 제안된 것은 바로 '정합의 사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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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박 건조대에서 배를 해체하고 최상의 부품으로 다시 건조할 수 없는 항해자들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신들의 배를 건조해야 하는 처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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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학파의 지도자였던 오토 노이라트의 위의 은유에서 보듯, 과학의 전략은 실용적이었다. 바다에 빠질 순 없는 노릇이니 삐그덕거리더라도 아무튼 지금 타고있는 배에서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바로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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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 1전공은 화학이지만, 내 오랜 관심은 보증된 진리로서의 과학 그 자체보단 과학이 갖는 의미를 향해있었다. 《온도계의 철학》 또한 다루고있는 대상의 초점은 온도계에 맞춰져있지만, 온도계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는 과학 지식 그 이상의 것이다. 출판된 지 7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지만, 지금도 유용하고 앞으로 더 유용해질 만한 책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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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의철학 #장하석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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