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는 나를 재우기 전이나 한가로운 주말 아침이면
나를 안고 그보다 더 어릴 적의 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세탁기를 앞으로 다 끌어내고 베란다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청소를 다 하고 세탁기를 다시 밀어 넣으려고 해도
암만 해도 세탁기가 들어가지를 않는 거야.
뭔가 이상해서 세탁기 뒤를 들여다봤더니
아니 글쎄 네가 거기 끼어서 배시시 웃는 거 아니겠니.
아마도 네 딴에는 그게 숨바꼭질인 줄 알았나 보지?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그러다가 찍찍 창자가 터지면 어쩌려고
하루는 네가 아파서 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들어오는데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늘어져서 자더라고.
몸이 흐물거려서 업고 오는데 무척이나 힘들었어.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내려놓자마자 반짝 눈을 뜨더니 노는 거 아니겠니?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었더니만
처음에는 슬렁슬렁 말을 타다가 점점 신이 났는지
나중에는 손가락으로 하늘까지 찔러대면서
“하! 하!” 소리를 내며 땀을 뻘뻘 흘리며 놀더라.
그렇게까지 재미있게 말을 타는데
그래, 앓아 누워있는 것보다 저게 낫겠다 싶더라고.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것들과
그 이야기를 할 때의 엄마의 행복한 감정이 버무려진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은
바쁜 엄마가 나를 안고 있는 가장 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많이 펼쳐보아 닳아버린 동화책 같은,
전적으로 엄마에 의해 왜곡되었을 그 레퍼토리를 따분해하면서도
킁킁거리며 엄마의 살갗냄새를 맡곤 했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잠들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이야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내용이기 보다는
그걸 이야기해주는 사람의 낮은 목소리와
나를 안아주는 그 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옛날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느닷없이 호랑이가 어흥-하고 나타나고 도깨비가 쿵쿵거리며 골목 끝에서 걸어오는
허무맹랑한 그 이야기가 치밀한 서사구조를 가졌을 리 없다.
그래도 번번히 꺄악 소리를 지르며 파고들 수 있는 그 할머니의 품이 있었기 때문에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즐거운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흥미진진한 사건이 일어나기 보다는 그냥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들이,
지금 당장 숨막히는 아픔이기 보다는 조금 지나 무던해진 그 시간들이
잔잔한 독백처럼 툭툭 내려놓는 그들의 삶을 읽는 것이
마치 엄마나 엄마의 엄마가 들려주던 그 이야기들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