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생일, 멜리사는 뜻밖의 생일 선물을 받는다. 엄마가 남긴 책 한 권. 그녀의 엄마는 여덟 살 때 죽었다.
엄마가 죽었다.
갑자기. 작별 인사도 없이.
읽던 책의 뒷얘기를 마저 해주지 않고.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이.
그리고 17년 만에 나타났다.
별안간. 변호사를 통해.
엄마에 대해 잊은 듯 살았는데.
불안할 때면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턱이 딱딱 움직여버리는데.
엄마는 이런 멜리사를 알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책을 남겼다.
책의 첫 장을 읽는 동안 나는 멜리사의 엄마 엘리노어가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여덟 살이라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아니다.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암이었다. 책을 남길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있었다. 그건 충분히 설명할 시간 또한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엘리노어는 그러지 않았다.
종종 우리 엄마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준다.
옥상에서 난간 밑을 내려다보는 나의 발을 잡아 가까스로 구한 일. 쬐끄만 게 놀이터에 가서 논다고 우기더니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 낮은 턱을 의자삼아 오도카니 구경만 하던 일. 뒤집어진 악보를 침까지 발라넘기며 피아노를 뚱땅거린 일. 할머니 집에 가있으면 일 나간 엄마가 데리러 오기 몇 시간 전부터 현관 앞에서만 놀았던 일.
몇 십 분 기다린 일도 미안한 추억이 된다.
그 기다림을 멜리사는 17년 동안 했다. 괜찮았을 리 없다. 상처받았을 거다. 혼자 많이 울었겠지. 많이 미워하고.
그러나 다음 장을 넘기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많이 울었다.
‘먼저 오븐을 180도로 예열하렴.’
아무 것도 이 말을 처음에 꺼내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스물다섯 멜리사보다 서른셋 엘리노어가 더 가까웠다.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버렸다.
때로 울고, 이해하고, 마음 졸이고, 안도하면서 책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엄마를 찾았다.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늘어난 민소매 사이로 배가 삐죽 나왔다. 살갗이 부드럽다. 한참 만졌다. 그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