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해를바라보는자님의 서재
  • 28
  • 정유정
  • 16,020원 (10%890)
  • 2013-06-16
  • : 17,408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고 할 때 정신 못 차리고 따라간 내 탓이거니 해야겠다.

 괴물은 내 피눈물과 심장을 전유물로 삼은 채 보무도 당당히 귀환했으리라. 

 

 

정유정 작가의 신작소식에 흥분한 채 몇 시간에 걸쳐 읽고 난 뒤 
 '책 속의 현실'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데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차마 다시 읽을 용기는 안 나고 머릿 속을 더듬어 가며 이 리뷰를 쓴다. 

 

 28은 초중반부에 들어설 때까지 독자를 쉼없이 몰아부치며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주인공 재형은 사연 많은 수의사로 다큐에 출현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자신의 과거사가 밝혀져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인물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 기준은 소방대원으로 자신의 남편을 구해달라는 신고 전화를 받고 

그 곳에서 처음 마주친 늑대개와 마지막까지 인연을 맺게 되며
윤주는 재형에 대한 투고를 받고 그를 물 먹인 신문기자로, 뒤에 재형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하게 된다. 
이 밖에도 싸이코패스 같은 동해, 동물인 링고의 시점 등 각기 다른 존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렇다고 해서 글이 어수선하거나 개개인의 감정선이 뚝 하고 끊어지지도 않는다.

적절한 선에서 끝맺음 하고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그러다 인물들끼리의 접점이 생기고 결국에는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는 과정을 거친다.

 

 

정유정 작가는 이렇게 강인한 문체,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을
구사하며 전작보다 더 현실적이고 실존 인물 같은 캐릭터들을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사실 초중반까지 읽어내려 갈 때만 해도 의뭉스러운 마음을 품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점차 불길처럼 번져 나가는 전염병들과 화양시의 봉쇄, 그것을 헤쳐나가는 주인공들, 
와중에 공공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미치광이 동해, 수십 마리의 개들의 사체를 묻는 장면에서

비인간적이었던 윤주가 인간이 되어 재형과 마음을 나누고 결국 일정한 선 이상을 넘게 되는

과정이 아무리 봐도 한 편의 잘 빠진 영화로 만들어지면 이이상 좋을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는지 하나도 모르는 초짜가

이 부분은 이렇게 끊어서 장면 장면으로 만들면 좋겠구나, 싶을 정도로

탐이 나고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내내 그러한 마음이 들다보니 이 작가가 설마 소설을 쓸 때 무슨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겠지라는 의심의 한 구터기가 모락모락 치솟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의 색이 짙어질 찰나, 정유정 작가는 나를 비웃었고, 그 불유쾌한

생각을 단박에 날려버리는 포문을 열었다.  

(아마 초반부를 보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그리고 환호성을 울리다
결국 책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르는 영화감독님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그녀는 각 인물들의 사연, 그리고 신념, 결국 마지막에 사회, 국가가 각기 그 자신에게

최선일 수 밖에 없는 행동을 보여주며 내게 '누구를 비난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나는 인물들이 얽혀서 피를 토해 내고 개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에서 분노는 했을지언정

누구도, 어떤 신념도 차마 비난하지 못했다. 

정유정 작가는 심지어 그 미치광이 동해도 어린 시절 사랑받기 위해

애쓰다 차마 아버지를 죽이지 못하고 그의 개를 죽여 스스로를 구원했다는 장면을 

서술해 놓아 나를 고뇌의 구렁텅이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팔락 팔락 넘어가는 책은 재난의 현장과 아수라장 속을

가감없이, 피범벅으로 그려냈다. 
결국 글이 끝을 향해 갈수록 나는 눈물을 몇 번이나 훔쳐내야 했고 
무력함과 유약함으로 온 몸을 바둥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을 읽어야 했다. 내 비참함보다 마지막 줄글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그 전염병 걸린 도시가 나를 몇 날 며칠

앓게 만들었다.

 

 

 


 

 
정유정 작가는 이 글을 쓸 때 온전한 정신을 유지했을까 싶다.
독자가 이렇게 심적으로 쥐어짜여지며 괴로워 할 정도면 작가는 그 몇 배는 괴롭지 않았을까. 

상징적 기호들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거대한 세상을
창조해 냈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동참시키고,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만드는

참, 대단한 능력이다.

 
마지막에 책 겉면의 띠지와 작가의 말을 보다 웃고 말았다.  
책을 팔기 위한 현혹스러운 문장이 아닌 

이렇게나 사실의 문장을 적어놓은 책 겉면의 띠지는 또 처음이다 싶어서. 

 

백 번 천 번 괴물에게 심장이 찢겨도 좋으니 더 많은 것을
나에게 토해냈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그리고 이 상상의 세계를 나만 겪기에는 억울하다는 심정으로 
다른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작가의 고혈과 진기가 피로 분화한 '글' 한 편 보시라고.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