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광부가 될 운명이었던 한 소년의 삶을 바꾼 어느 찬란했던 여름날의 기록"

🔸️전쟁이 있었다. 분쟁이 끝났지만 그것을 통과한 이들이 고향까지 그 기억을 이고 왔기에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빛 속에 전쟁은 형형히 살아 있었고, 피로 물든 망토처럼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심장에서도 전쟁이 자라났다. ...결코 뽑히지 않는 시커먼 꽃과도 같았다. -21쪽
로버트는 2차세계대전이 마칠 무렵 16살이 된 소년이었다. 전쟁이 시작할 즈음에는 아직 어렸던 터라 참전을 용케 피하였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여러모양으로 체감하였다. 참전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로서 전쟁으로 죽거나 부서진 채로 돌아온 또래들에 대한 마음의 부채도 적지않았을 것이다. 전후의 상처와 공허 속에서 그는 전쟁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고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덜 패할 뿐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는다.
이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자신 또한 광부가 되어 땅 속 갱도를 더듬으며 살아야한다는 끔찍한 사실에 직면한다. 또한 먼저 죽어간, 의미없이 부서진 또래들이 누리지 못한 생에 대한 깊은 갈망을 느낀다. 그는 집을 떠나 삶을, 자연을 탐닉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느낀 것이다.
🔸️삶은 저 바깥에서 내가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주기를, 허겁지겁 집어삼켜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각이 내 안에서 깨어났고, 도무지 만족을 몰랐으며, 나로서는 그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혹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깔려 익사하듯 죽어간 또래들을 위해서라도 내게는 삶을 탐닉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23쪽
그렇게 길을 떠난 로버트는 이곳 저곳 허드렛일을 해주며 식량을 자급하고 헛간이나 들판에서 잠을 자며 나아간다. 그리고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덜시 파이퍼라는 한 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정원을 손질해주며 식사를 얻어먹고, 별채를 수리해주며 식사와 잠자리를 얻는다. 오래 머물지 않고 바다를 향해 더 나아가려던 로버트는 덜시의 훌륭한 식사에 낚여서, 더불어 그녀에게 느껴지는 어떤 필요에 부담을 가지며 하루, 하루 더 머물게 된다. 방대한 지식과 훌륭한 요리솜씨를 가진 덜시를 통해 로버트는 인생에 대해, 바다에 대해, 전쟁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로버트는 소년을 지나 청년에 이른다. 그리고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선택한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이 소설은 영국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해서 읽는 내내 풍경을 머릿 속에 그려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또한 작가인 벤자민 마이어스가 영국의 더럼 출신이라고 하는데 소설 안에서 로버트의 고향이 더럼으로 나온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도 추측해본다.
또 소설 중간에 더럼의 시장광장에 있는 런던데리 후작의 동상, "말 탄 사람"이 나오는데 그에 얽힌 일화가 흥미롭게 언급되어서 인터넷에서 직접 그 동상을 검색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소설 속 덜시 파이퍼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는 지식과 교훈의 분량이 상당한 것 같다. 소년 로버트의 여정과 함께 나 또한 덜시에게 인생 강의를 집중적으로 수강한 듯 하다.

또 이 책을 통해 시와 문학이 존재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시와 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풍요롭게 해서 전쟁 따위는 생각하지 않게 한다는 덜시의 말처럼... 예술과 문학은 권력과 실리의 세계 너머 눈에는 보이지않지만 너무나도 가치있는 것들을 일깨워준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세상은 자유롭고 또 평화로워질 것이다. 첨단 기술과 AI가 위상을 드높이는 이 시대에 문학과 인문학의 필요성을 다시금 어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네가 지금까지 느낀 모든 감정은 너보다 앞선 누군가가 느꼈던 거란다. ... 바로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게 시의 존재 이유지. 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일러주는 인류의 표현방식이야. ...시는 시대를 초월해 공명하는 위로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 138쪽
🔸️"마음이 풍요로운 이들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지. 그건 확실해. ... 모든 순수가 사라진 지금, 어떻게 해야할까? ... 이 모든 무의미한 폭력 속에서 반드시 좋은 것이 탄생해야만 해. 시와음악과 와인과 낭만이 길을 안내하게 하자꾸나. 자유가 승리하게 하자꾸나." - 144쪽
[수평선 너머]는 자연의 수려한 묘사에서부터 인생과 사람, 전쟁에 대한 정제된 문장들이 가득해서 밑줄 긋거나 필사할 것이 상당히 많았다.
인생에 대해 탐닉하고 전망해야하는 청소년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글로 한껏 느끼고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싶다. 그리고 찬찬히 삶을 음미하듯 읽어보라고 권하고싶다.
* 춢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