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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의 서재
  • 막막한 독서
  • 시로군
  • 17,820원 (10%990)
  • 2024-11-29
  • : 962


책 제목부터 마음이 이끌렸다. 요즘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이다. 책을 좋아하고 자주 보는 편이지만 독서는 나에게 늘 그렇다. 너무나도 넓고 깊어서 막막하다는 느낌. 딱히 부정적인 의미로는 아니지만 책이라는 걸 이렇게 무작정 읽어가는게 맞는 걸까 하는 마음일 때가 많다. 15년간 독서하면서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는 저자, 시로군의 이 책을 통해 뭔가 막막한 나의 독서인생에 전환점을 찾을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부터 시로군 또한 독서가 막막하다는 진솔한 고백을 읽으며 위로와 공감까지 얻게 되었다.

"어쩌면 책이란 물끄러미 보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눈앞의 페이지는 머릿속 생각을 펼쳐놓는 일종의 화폭이나 스크린 같은 것이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책을 펼치고 덮는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책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읽는 일은 바로 그러한 반복, 일견 무익해 보이는 반복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질 테니 말이다."

[막막한 독서]를 통해 엿보는 시로군의 독서 방식은 참 매력적이고 도전적이다.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연결하여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작품 속 인물과 작가의 인생을 비교대조하여 감상/해석하기도 하며, 작가에 대한 여러 비평가들의 다양한 분석을 참고하기도 한다. 독서를 매우 깊게 그리고 넓게 그야말로 종횡무진하며 작가, 작품, 시대, 비평 등을 아우르며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는 그의 독서방식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스스로는 그만한 수준으로 읽고 감상하지는 못할지라도 시로군의 글을 통해 감상하는 이 시간만으로도 내가 이미 충분히 멋진 독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로군의 독서록을 읽어가다보면 갑자기 (전혀 내 취향이 아닌) [돈키호테]를 읽어보고싶은 마음이 올라오고, 카프카라는 작가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생기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또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 작가, 발자크와 체호프에 대해 꽤나 매력적인 소개를 받게 된다. 연봉 30파운드로 자존심과 생계를 지켜낸 [제인 에어]를 버지니아 울프가 추구했던 독립적인 여성상의 관점으로도 살펴보게 되고, 전혀 소녀적이지 않았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삶과 비교하여 [작은 아씨들]을 살펴보면서 선입견에 가려져 보지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을 왜 읽어봐야하는지도 수긍하게 된다.

68쪽 발자크

"[골짜기의 백합]은 '별을 보면 회초리를 맞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소설이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 낭만주의 시대에서 사실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로 해석

142쪽 체호프

"한편, 두 소설을 통해 체호프는 이야기의 의의, 소설의 의의를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소설을 읽고서 거기서 삶의 교훈이나 깨달음이 될 만한 주제를 끌어내 설파하려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란 재밌거나 신기하면 그만이다."

216쪽 루이자 메이 올콧

"루이자 올콧은 여성의 상상력은 '마녀의 저주'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성에게 문학적 상상력이 있어도 그를 실현할 방법이 극히 제한된 시대였으니 자신의 재능이 저주로 여겨졌을 법도 하다."

또 번역에 대해 꽤나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서 한 작품에 대한 다양한 번역의 느낌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번역이라는 또 다른 창작과정에 대한 견해들이 인상깊다. 나 또한 고전문학작품을 고를 때면 이미 다양한 번역서가 존재하기에 상당히 고민하는 편이다. 출판사별 작품들을 미리보기로 하나 하나 살펴본 후 내가 느끼기에 가장 자연스럽고 가독성이 좋은 버전으로 선택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나에게 시로군이 우리말로 자연스러운 번역이 최선으로 여겨지지만 때로는 아닐수도 있다는 점, 우리말로 자연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어로서의 그 작품의 원래 말 맛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번역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최선의 번역본을 찾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톨스토이 문체의 이러한 특징(의도적인 거친 표현과 문구)이 영어 번역자들에게는 '고치고 다듬어야 할 결점'으로 받아들여진 면이 있다...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작가의 고유한 문체를 깎고 수정한 결과일 수도 있다." - 49쪽

"이 세계에는 원문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번역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존재하는 건 원문과 번역 둘 다이다. 그리고 둘 사이의 '사이공간'이 존재한다. 산시로는 원문과 번역 그리고 그 사이공간까지 세 지점을 모두 보는 셈이다." - 317쪽

시로군의 독서록이나 다름 없는 [막막한 독서]를 읽으며 독서가 얼마나 넓고 깊어질 수 있는지를 간접경험할 수 있었다. 그저 읽어나가기에 급급한 독서라고 치부하기엔 아쉽지만 아무튼 다소 조급하고 가벼운 나의 독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많은 자료와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덧 독서가 진부해진 사람이라면 이 책은 독서에 대한 보다 높은 수준의 도전과 매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또 이미 읽은 고전들에 대해 좀 더 새롭고도 깊이 알고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추천할 만하다.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의 면면들을 다채롭게 다루어 마치 새로운 작품처럼 내 앞에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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