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몇 가지 읽어왔습니다만, 그의 대표작으로 꼽고 있는 <상실의 시대>는 최근에 읽었습니다. 1월에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도쿄 와세다 대학에 있는 하루키박물관을 방문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여행기를 정리하여 <설국을 가다>로 출간하는 과정에서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하루키를 좋아하세요?>를 읽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빠져있는 독자들이 적지 않은 반면 그의 작품에 호의적이지 않은 독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는 아마도 이도저도 아닌 중간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전작읽기를 해본 작가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전작 읽기에서 머물지 않고 작품 속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가기도 하는 충성도가 높은 독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일본에서 시작된 경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키를 좋아하세요?>는 하루키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일본 독자 21명이 참여하여 하루키의 작품을 분석하는 노력을 담아낸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은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의 풍경, <세계의 끝>의 풍경, <양을 둘러싼 모험>의 풍경, <해변의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 등 4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아간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장에서는 하루키의 작품들을 장편소설, 단편소설, 에세이, 번역소설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을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3장은 하루키의 연대기를 정리했고 4장은 요리, 장소, 음악 등 20가지의 주제어를 통하여 하루키 문학의 비밀을 풀어낸다는 기획입니다. 5장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거리, 여성, 친구, 섹스, 인생, 식사, 풍경 등 7개의 단어와-엄선된 투명한 ‘언어’라고 했습니다- 잘 건조된 문장 위로 떠 오르는 심오한 하루키의 세계를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심오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 기획에 참여한 독자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는 것도 부족하여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 작품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보려한다는 점입니다. 웬만한 충성심이 없으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품에서 배경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탐정수사의 수준으로 탐사와 추리를 동원한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이런 움직임은 일찍이 우리나라 연속극 <겨울연가>를 시청하고 촬영지를 찾아오는 일본관광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아주 오래 전이었고, 요즈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이런 것도 유행이 되나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필자도 책읽기와 여행을 묶은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그런 부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루키를 좋아하세요?>를 읽어가다가 문득 의문이 든 대목이 있습니다. “LA로 향하는 기내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을 때 정말 심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요하고 어둑한 밀실에서 책을 읽으며, 나는 깊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221쪽)”라는 대목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지만 눈물을 흘릴만한 대목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든 탓인지 눈물을 쏟는 그런 상황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동을 받으면 눈물이 울컥 치밀곤 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다보면 더 읽어보고 싶은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쓸 데 없는 풍경> 정도는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에 관한 수필이라는 것과 과연 쓸 데 없는 풍경이 있을까 싶어서입니다.